이, 별 ━ 스이다

 

"정국이 네가 좀 맡아줄래?"

 

고기를 구우며 자연스레 내민 김 피디의 제안에 정국은 고기 두 점을 입안에 넣고 열심히 씹다가 도르륵 눈을 굴려 눈치를 봤다.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지만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장르이긴 했다. 물론 사람이 아닌 자연을.

 

"고기 먹다 눈치 보면 체한다."

"와..이 형, 진짜. 형이 소 사줄 때부터 알아봐야 했었어."

"세상에 공짜 소는 없어, 인마."

 

너털웃음 터트리는 김 피디를 향해 한숨을 푸욱 내뱉은 정국은 투덜거리면서도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두었다. 일단 마저 들어보겠다는 반응에 그는 불판 불을 줄이고 정국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왜 하필 전데요."

"너 요새 잘나가잖아."

"형만큼은 아니잖아요. 그 나이에 벌써 xx방송 메인 피디 하면서."

"음, 그건 그렇네. 이 형이 얼굴만큼이나 좀 잘 나긴 했지."

"아, 진짜. 말 안 해줄 거에요?"

"네가 하기 꺼려하는 이유 먼저 알려주면."

"와..이 형 진짜..진짜 아직도 그러냐."

 

그러니까 알려줘 봐. 씩 웃으며 본인 소주잔을 채우는 김 피디의 모습이 장난기 가득해 보이다가도 어딘가 씁쓸하기도 해 장난을 칠까 고민했던 정국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김태형..배우님은 만난 적이 없어서 어색하다구요."

"..? 야, 너 그럼 처음 만난 아이돌들이랑은 어떻게 작업했냐?"

"아니, 형은 대배우랑 아이돌이랑 같아요?"

"응, 둘 다 연예인이잖아."

 

뭐가 문제냐는 김 피디의 표정에 정국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우다다 쏟아냈다.

 

"형은 방송국 피디잖아요. 그니까 익숙할 수도 있지. 근데 나는, 나한테는 아니지. 형은 대배우도 방송국에서 매번 지나가다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닌데. 진짜 티비에서만 보는데 나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오케이, 정국아. 알았어. 형이 잘못했다."

 

김 피디는 진정하라며 정국의 그릇 위로 고기 여러 점을 올려주었다. 이 형은 진짜 날 너무 잘 알아서 짜증 나. 고기를 씹으며 자신을 힘껏 째려보는 정국 때문에 씰룩이는 입가를 꾸욱 참아낸 김 피디가 말을 이었다. 왜 너냐고 물었지.

 

"태형이가 죽기 전에 너랑 작업해 보고 싶다고 그랬거든."

"..뭔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한대요, 그분은."

 

태형이가 아파. 치익. 불판에 올려진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 사이로 덤덤하게 그는 말했다. 대학 생활 때 지겹게 봐왔던 그 시절의 형 같아서 정국은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뻔했다.

 

"아니..형은..무슨 그런 말을 고기 구우면서 해요?"

"그렇다고 울면서 하기엔 좀 그렇잖아."

"그건..그렇긴 한데..아니, 잠깐만. 근데 형이, 아니. 김석진이라는 사람이 원래 이렇게 누가 부탁한다고 대신 뭐 해주는 그런 캐릭터였어요?"

"..아닐껄?"

"근데 왜?"

"정국아, 내가 말 안 했던가."

"뭘요."

"태형이 내 친동생이야."

"..아닌데?!"

 

정국은 다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키고 검색창을 두들겼다. 분명 초록 창이랑 지식나무에서 부모님 둘 다 돌아가셔서 가족 없다고 그랬는데. 정국은 재빠르게 검색 결과를 김 피디를 향해 들이밀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니까. 절연했거든. 돌아가셨다고 하면 질문도 없고 편하지."

"이상하다. 분명 김 배우님 아역 데뷔잖아요? 이제 갓 중학교 들어간 어린애한테 부모가 그랬을 리 없..잖..."

 

여기 있더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소주잔을 넘기는 김 피디의 표정이 어딘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고 느낀 정국은 말하길 그만뒀다. 그래서 형이 그때 그랬구나. 괜스레 생각나는 옛 기억에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던 정국은 넌지시 그에게 자신이 궁금해했던 과거를 말했다.

 

"형, 나 대학 들어간 해에 신입생 환영회 기억해요? 우리 동기들 전부 형한테 관심집중이었잖아요. 그때 눈치 없이 누가 부모님 호구조사 하는데 형이 진짜 단호한 목소리로 부모님 없다고 웃으면서 그랬어요. 그때 얼마나 분위기 살벌했는데."

"내가 그랬었나."

"난 형이 왜 그렇게 단호했을까 싶었어요."

 

'없어. 낳아준 사람들은 있어도. 그런 거 없어.'

 

여전히 기억 속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건 분노였구나.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정국은 그 감정의 깊이를 알 길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과 단 둘뿐인 가족. 그런 동생이 아프다고 그가 덤덤히 전했다. 정국은 그의 얼굴을 차근히 살폈다. 진짜 오래된 사이인데도. 여전히 정국은 고요한 표정 속에서 그 슬픔을 알 길이 없었다.

 

"그..김 배우님. 그 사람, 형 동생이라는 사람이요. 많이 아파요?"

"조금 말라보이긴 해도 건강한 아이였어. 돌봐주신 당숙이랑 형 호강시켜준다고 자기가 좋다고 시작한 연기 밤낮 안 가리고 했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독이었나 봐."

 

그는 감정을 추스리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2년째야. 한참을 말이 없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서 요새 작품 활동이 전에 비해 뜸했구나. 정국은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쭙잖은 위로는 하지 않았다. 간혹 추임새를 넣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전하는 진심을 끝까지 들었다. 형도 진짜 힘들었겠다. 담백한 정국의 위로에 김 피디는 잠시 예전처럼 웃어 보였다. 

 

"그래서 할 마음이 생겼니, 정국아."

"아니, 형은..진짜..하나만 해주면 안 돼요?"

"어차피 정국이 너 할 거 알아서 그래."

"그걸 형이 어떻게 아는데요?"

"너 태형이 팬인 거 아까 형한테 다 들켰어."

 

여기 스페셜 모둠 2인분이랑 소주 두 병 갖다주세요. 종업원을 불러 추가 주문을 한 김 피디는 정국의 잔을 채웠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 행동에 정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형, 진짜 짜증 난다. 그런 투정에도 김 피디는 웃을 뿐이었다.

 

"어쩌면 네가 태형이를 붙잡을지도 모르잖니."

"뭐가요?"

"..글쎄다."

 

글쎄다. 김 피디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다 이내 소주잔을 꺾었다. 아리송한 답에 정국은 곰곰이 그가 했던 말을 되내였다. 어쩌면 네가 붙잡을지도 모르잖니. 그건 현실을 받아들인 그의 포기였을까.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절실함이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메인 피디가 형이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난 아니라고 말한 적 없는데."

"아..즌쯔..김슥즌.."

 

그러다 어금니 나간다. 끅끅거리며 웃어넘기는 김 피디를 보며 정국은 저 반듯한 면상을 언젠가 때리고 말겠다 마음먹었다. 일단은 마음만. 정국은 어색한 미소를 띤 채 관계자들에게 인사했다. 익숙하지 않은 자리,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던 그때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안녕하세요, 배우 김태형입니다."

 "어서 와요, 태형씨."

 

저 두 사람은 일할 때는 사적인 감정이 없나 보네. 자리로 안내하는 김 피디를 지켜보던 정국은 태형에게 시선을 옮겼다. 잘생겼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카메라가 저 이목구비를 다 담지 못하는 게 맞네. 그다음은 아쉬움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태형은 웃으며 정국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감독님. 진부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팬이에요. 저 지금 진짜로 약간 좀 떨리는 기분인데, 저 진짜 감독님이 연출하신 영상들 다 찾아봤거든요. 약간 저한테는 감독님이 아트디렉터 중 최고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아니, 아니에요. 저도 김 배우님 팬이에요."

 

살짝 고개를 내려 수줍게 말하는 태형을 보던 정국은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다 괜시레 부끄러워져 시선을 내렸다. 둘이 미팅 나왔냐. 묘한 분위기를 지켜보던 김 피디가 한마디 던지자 다들 웃으며 두 사람을 놀렸다. 한층 누그러진 긴장감에 정국은 조금 더 편하게 리허설 자리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72시간, 총 3일 동안 김 배우님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형식이라는 거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삶을 사는 그도 모두와 다르지 않다는 걸 의도한 거고..그런데.."

"제 투병 생활이 비쳐도 되는지 궁금하신 거군요."

 

정국은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태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이미 결정을 내린듯했다.

 

"저는 준비할 시간을 갖는 거예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시간이요. 사실 건강 때문에 작품이 안 들어올까 봐 조용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구요, 힘들어서. 나도 내 사람들도. 그래서 말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어요." 

 

태형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간결하게 답했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그가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연기를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덤덤히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지. 태형의 오래된 팬인 정국은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하지 말걸 그랬나. 조금 울적한 기분에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정국은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를 카메라에 담은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정국은 태형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아픔과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모습이 정국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의외였다. 아픈데도 웃는 그 모습이.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이. 멈추지 않는 코피를 쏟아내면서도 되려 저 때문에 놀란 영화 촬영팀들을 다독이는 모습이. 사로잡힌다는 건 이런 걸까. 정국은 렌즈 너머로 그를 찬찬히 관찰했다. 어느덧 겨울이 가까워졌는지 그는 하얀 입김을 뱉고 있었다. 그를 걱정해 그만 차에 타자는 매니저의 권유에도 그는 잠시만 시간을 달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곳을. 

 

"사실 나는 외계인이에요. 이제 새로운 별로 떠나는 거라 생각하면 되려나. 미지의 행성으로."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카메라 옆으로 고개를 내민 정국을 태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전히 밤하늘을 보다 슬쩍 웃더니 시선을 내리며 작게 속삭였다. 아쉽네요. 쓸쓸한 흩날림에 정국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뭐가 아쉬워요?" 

 

태형은 카메라를, 정국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 어쩌면 그는 울고 있는 게 아닐까. 

 

"전부는 아니어도 이 별사람들은 날 사랑해줬잖아요." 

 

여전히 엉뚱하게 구는 그 모습이 데뷔 초의 그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김태형이라는 사람을 가슴에 담았었다. 저와 비슷한 또래. 순수하고 예쁜 사람. 그런 태형을 보며 꿈을 키웠다. 언젠가 저 사람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 꿈이 이뤄졌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정국은 이유 모를 답답함에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리고 일은 터지기 마련이었다.

 

 


 

 

태형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전화에 스케줄을 확인하고 잠을 청하려던 정국은 정신없이 차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모든 처방이 끝났는지 태형은 파리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 제게 인사했다.  

 

"매니저 형은 지원 나가고 형도 촬영 중이라 바빠서요. 누굴 불러야 하나 했는데 생각나는 게 감독님이더라구요."

 

웃으며 연신 제게 미안하다 말하는 태형을 보자 제가 느끼던 답답한 마음이 무엇인지 일순간 알아챘다. 울컥이는 감정에 정국은 저도 모르게 뾰족하게 답했다. 

 

"뭐가, 뭐가 미안한 건데요."

"그..부담스럽게 해서 미안해요. 놀라게 한 것도. 감독님이랑은 상관없는데..그..진짜 미안해요.."

"왜. 왜, 태형 씨는 이 순간에도 웃어요? 왜 참아요? 지금 힘들잖아. 힘들면..미안하다 하지 말고 힘들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누가 뭐라고 하냐구, 진짜."

 

제 분에 못 이겨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정국에 놀라 자리에 일어서려는 태형을 정국이 울먹이며 막았다. 왜 혼자서 그래요.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면 이별도 같이 준비해야지. 

 

"왜, 왜 혼자, 크흥. 혼자, 서만 해에." 

 

우는 정국을 어쩔 줄 몰라하던 태형은 연신 소매로 눈가를 닦아내는 정국을 도닥였다. 그러다 짓물러요. 슬그머니 손을 잡아 주는 목소리가 조금 울먹였다. 

 

"고마워요, 정국씨." 

 

목소리를 가다듬던 태형의 눈가도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까지 안해도 괜찮은데.."

"이미 제작진에 연락 돌렸어요."

 

급하게 촬영 일정을 조율한 정국은 아침이 되어서야 퇴원을 할 수 있게 된 태형을 차에 태우며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촬영은 없다 단호하게 말했다. 태형은 짧게 숨을 뱉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진짜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아요."

"으응? 저 혼자 잘하는데.."

"가더라도 자는 거 지켜보고 갈 거예요." 

 

고집을 피우는 정국에 결국 두손 두발 다 든 태형은 알겠다며 군말 없이 네비에 자신의 집 주소를 찍었다. 도착한 그의 집은 생각 외로 그리 크지 않았고 생각보다 비어 있었다. 집 안을 둘러보는 정국의 시선이 머쓱했는지 자주 집을 비워 꾸미기보단 잠을 자는 편이라 말했다. 정국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씻고 오겠다며 욕실로 사라진 태형의 뒷모습을 쫓던 정국은 이내 찬찬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을 보면 사는 사람을 안다고 하던데. 조금, 외로워 보였다. 

정국을 부르기 위해 씻고 나온 태형은 거실 한 쪽에 누운 그를 보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들고나왔다. 어정쩡하게 빈백에 기대 잠든 그를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태형은 개구지게 웃더니 정국 옆에 나란히 누웠다. 자신은 익숙했지만, 새벽 내리 뜬눈으로 저를 간호했던 정국은 수마를 이길 방도가 없어 보였다. 형을 제외하고 이 집에 누가 들어온 적이 있었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태형은 무슨 용기였는지 긴 손가락으로 정국의 콧대를 훑어내렸다. 전정국씨. 태형의 부름에 정국은 움찔거렸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그게 귀여워서 태형은 코를 찡긋거렸다. 

 

"백색왜성은 별의 잔해지만 그 마지막 빛이 찬란하거든요." 

 

언뜻 정국의 귓가로 태형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의 끝도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지금도 아름답다 말해주고 싶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정국은 꿈에서 태형을 보았다. 저를 보며 예쁘게도 웃는 그 뒤로 초신성이 폭발했다. 알록달록한 빛 한가운데로 태형이 빨려 들어가 정국이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했다.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에 정국은 고개를 돌려 잠든 태형을 보자 조금 눈물이 났다. 꿈인 줄 알았는데도. 

 

 


 

 

해가 다 지고 어둑해져서야 두 사람은 잠에서 깼다. 처음이 아닌 것처럼 돌아가며 씻고 나온 둘은 자연스레 식사를 준비했다. 냉동실에 있던 식빵 한 봉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 계란 몇 개과 딸기잼. 시리얼까지. 태형은 익숙하게 빵을 물 반 컵과 함께 오븐에 넣어 구웠다. 이리저리 주방을 오가며 필요한 식기 도구를 찾아 꺼내는 그를 보며 정국은 스크램블에그를 접시에 담았다. 마주 보고 앉아 시리얼을 그릇에 붓는 그에게 태형이 물었다.

 

"나랑 별 보러 갈래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태형은 아까부터 우는 소리를 내는 정국을 보며 작게 키득거렸다. 반짝이는 별들이 예뻐서 정국은 카메라에 조금이라도 담아보자 싶어 연신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지만, 자신이 본 것만큼 나오질 않아 울상이었다. 좀, 찍혀주라아. 정국의 애원에도 사진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젠 포기했는지 조용해진 정국이 넌지시 태형을 불렀다. 김외계인씨. 태형은 그 부름이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비스듬히 들고 미소지었다.

 

"네, 전지구인씨." 

"내 욕심인 건 아는데요." 

"네에, 욕심내는 걸 아는데요?"

"난 태형씨가 이 별에서 좀 더 머물러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허를 찔렸는지 정국의 말에 태형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가지 마요."

"..정국씨."

"포기하지 마요."

 

태형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자신을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는 정국을 눈에 담았다. 포기하지 마요. 셔터를 누르는 그를 마주 보며 생각했다. 

 

그는 뭘 포기하지 말라고 한 거였을까. 

김태형이었을까 전정국이었을까.

 

 


 

 

"전 감독님."

 

촬영이 끝나고 짐을 정리하는 정국을 지켜보던 태형이 돌연 그를 불러세웠다. 정국은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다.

 

"저랑 화보 촬영 안 하실래요?"

"..네?"

 

조금 매력 없는 상태라 안 되려나. 머쓱한지 턱을 쓸어내리는 태형에 멍하니 바라보던 정국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당황하는 모습에 태형은 하핫 소리 내 웃었다. 부끄러운지 볼에서 솜털을 뽑는 정국에게 태형은 잔잔한 목소리로 전했다. 

 

"오늘 병원에 갈 거예요."

 

같이 가요. 그리 말하는 정국에게 태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괜한 기대도 실망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 축 처진 어깨를 도닥이며 태형은 그에게 말했다.

 

"이따 전화하면 받아줄래요?"

 

 


 

 

조금 힘들지도 모릅니다는 담당의의 말에 태형은 예상했다는 듯이 시선을 내린 채 미소지었다. 담당의는 그래도 마음을 바꿔서 다행이라 말했다. 

 

원래의 저라면 안 했을 거에요, 선생님. 

그런데 포기하지 말라더라구요.  

 

그래서, 그래서 저 붙잡아보는 거예요.

 

 


 

 

"전지구인씨."

[네, 태형씨]

"으응? 이젠 외계인이라 불러주지 않는 거에요? 아쉬운데."

[안 불러줄 거에요. 곁에 있길 바라니까]

 

정국의 직구에 태형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소리 없이 웃었다. 당신은 늘 할 말을 잃게 만들어요.

 

[오늘 병원 잘 다녀왔어요?]

"네, 조금. 조금 힘들지도 모른대요. 저."

[...]

"그래도 치료받겠다고 했어요. 잘했죠? 빨리 칭찬해줄래요?"

[..잘했어요, 태형씨]

"떠나려던 나를 붙잡은 건 정국씨니까. 정국씨를 위해서라도 포기 안 할게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핸드폰을 든 채 눈을 감은 태형은 이름을 불렀다. 정국씨. 태형의 부름에도 정국의 대답은 없었다. 귀에 닿은 화면 너머로 그려지는 작은 들썩임에 태형은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정국씨, 울어요?"

 

고마워요, 나를 위해 울어줘서. 

 

 


 

 

"여기가 감독님 작업실이구나."

화보 촬영을 위해 정국의 개인 작업실에 온 태형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눈에 담았다. 정국은 찍는 입장에서 찍히는 입장이 되자 어색한지 늘 끼고 다니던 카메라에 낯을 가렸다. 그 모습을 찍던 김 피디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눌러 참았지만. 촬영이 들어가기 직전 수정 헤메를 받던 태형에게 정국은 컨셉과 분위기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진지한 그 모습에 태형은 새삼스레 정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내였다. 정국의 모든 사진과 영상물을 본 태형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 사람만큼 본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구나 싶었다. 우연히 형을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인데 그땐 작품이 이 정도로 마음에 들지 몰랐지. 태형은 슬며시 미소지었다.

 

"정국씨."

 

파인더 너머로 태형이 정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려하게 떨어지는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정국아. 예상하지 못한 호칭에 정국은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고 태형을 바라보았다.

 

"날..네 별로 데려가 줄래?"

 

메마른 얼굴 위로 얹어진 그 미소가 정국의 가슴 한구석을 찔렀다. 따끔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이에겐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끝이 정해져 있다는 건 너무나도 괴로운 거였어. 한참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정국을 태형은 무엇을 바라고 물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말없이 기다렸다. 찰칵, 눌리는 셔터음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태형은 웃었다. 엄청나게 거대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한, 전정국다운 사랑이어서. 그래서 기쁘게 울 수 있었다.

 

"당신이 내 별이에요."

 

 

 

 

 

너라는

나라는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