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썸머처방전 ━ 로투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글렀다고들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발상이라 치부되는 것과 같이. 그건 나무지 사람은 아니니까. 사람을 열 번 찌르면 미친놈이다. 용도 용이지 사람은 아니니까.
그치, 개천에서 용이 어떻게 나. 용은 이무기 시체에다 알을 까지. 따지자면 파충류잖아. 사람은 포유류고. 알 낳는 주제에 부는 세습되는 부러운 새끼들. 애초에 종이 다른데, 같이 뒤엉켜 사는 게 불공평한 거라니까. 출신이 복권. 안 긁어도 금테가 떡하니 둘러져있는 그야말로 복 터지고 계 탄 상등 로또. 긁지 않아도 팔아 넘길 만한 가치가 있는 확실한 표식. 누군 땡볕 새끼줄 늘어진 마당에서 머리털도 다 안 자란 분내 나는 정수리 태워가면서 면 보자기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데, 누군 기계 돌아가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기계가 넣어주는 싱싱한 산소로 등 따시고 입가 촉촉한 상태로 팔자 깨나 좋게 배나 부풀리고 있잖아. 트름 하면 박수 받고. 똥 싸면 박수 받고. 울면 눈물 닦아주고. 백일엔 잔치. 일년 되면 다 같이 축하파티. 좋겠다. 기저귀 안 빨아 써서. 올챙이 드글거리는 냇가에 엉덩이 안 빠쳐 봐서. 냇가에 물도 모자라서 돌덩이 들어냈다가 튀어나온 귀뚜라미가 미간에 앉은 적이 없어서. 애가 애일 수 있는 게 누구한텐 그렇게 부러운 자격이라고.
정국은 대체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삶은 원체 흘러가기를, 미지의 것들과 싸워내며 나아가며 흘러간다고. 이기면 스무스하게, 지면 빡빡하게. 그리고 가장 먼저는 가난이 될 거라는 것을. 삶이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세 살 때 깨달았다. 한여름에 돋은 땀띠로 몇 년을 고생했다. 짓무르고, 까지고, 가렵고. 여름이란 제시어를 던지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형욱이 형. 라면. 흰 나시. 죽음의 냄새 등등. 시체 냄새는 아직 맡아보지 못했다. 그닥 궁금하지도 않았다. 냉장고에 들어갈 시기를 놓쳐 부패한 고깃덩이와 비슷한 결의 냄새일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옅은 안광을 머금은 거무칙칙한 동공이 도륵도륵 굴러갔다. 수정체는 주변의 상을 담아낸다. 대체로 먼지. 먼지. 또 먼지와 분진. 하얀 먼지, 노란 먼지, 샛노란 포크레인, 양아치 옷을 입은 사람 두어 명,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 방배동/산101-3 이라고 적힌 파란 지번. 파란 배경에 흰 글씨 조합이면 청량할 만도 한데. 외딴 데서 나동그니 볼품이 없다.
방배동 100-18, 100-19, 산101-3, 산 101-5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종이 쪽지인데, 재개발 근처에도 못 간 잉여 땅의 지번이다. 공시지가가 개 바닥인, 그야말로 실패한 토지들. 재개발 토지와는 그 어떤 접점도 없는, 잡초가 무더기로 자란 텃밭만도 못한 땅. 그냥, 존버할 이유가 없는 집터. 정국의 집 지번은 산101-3.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게, 작은 세계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다. 실거주자를 내동댕이 쳐놓고.
“쉬면서 하세요,”
“······ “
“쉬면서······ “
정국의 말이 닿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들으라고 한 소리도 아니었고, 햇빛에 녹아가는 중이었기에 그럴 기력도 없었고, 소리도 빽 지르고 싶었으나 그럴 의지가 없었다. 누가 제 발을 꾹꾹 짓이겨도 버럭 하고 윽박지르긴 커녕, 힘없이 눈물이나 툭툭 떨어트릴 것 같았다. 디지털 시대에 꼴사납게 쪽지야. 그러나 당장에 오늘 아침 폭염으로 사람 둘이 죽었단 뉴스도 못 봤던 정국이었다. 바로 앞에 굴러다녔던 쪽지를 한번 낭독하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눈꺼풀 두 쌍이 서로의 키스를 바랬다. 눈을 오래 감지 않으면 점막에 다래끼가 돋았다. 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몸뚱아리였다. 그게 순리임을 알아도. 불에 태운 연가시처럼 쪼그라들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것을 알아도. 거추장스럽기만 한 속눈썹을 죄다 잡아뜯어버리고 싶었다. 감고 뜰 때마다 치렁치렁했다. 그게 다크서클을 더 짙어보이게 만들었다. 사람을 둔해보이게 만들기도 했고.
팔과 손의 이음새가 부자연스러웠다. 피죽도 못 먹어서 그렇다. 피죽은 무슨 색일까, 라는 궁금증엔 왠지 금속 맛이 날 것 같다는 결론을 냉큼 갖다 붙였다. 정국은 퍼석한 손을 들어 눈 위로 차양을 만들었다. 어쩜 이렇게 핏기가 없지.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붉은기가 아주 예술적으로 없었다. 피부는 뽀얗다기보다 탁함의 정도에 가까웠다. 모기도 사람인지 모르고 지나갈 것 같았다.
정국은 누구 글 쓰는 능력 특출난 사람 한 명만 잡아다가 삼일 정도만 육체를 빌려주고 그 감상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자신의 몸으로 숨을 쉬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다. 사람이 자신을 이렇게나 불쌍하게 여길 수 있는 건지. 핏기 없다는 사유 하나만으로 이러게 진득한 연민에 빠지는 일은 좀처럼 쉬운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왜. 정국은 자신이 왜 자기 자신에게 동정을 바라는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총체적으로 암울하고 어둡고 안쓰러웠다. 핏발 하나 없는 매끈한 눈동자와 새카만 홍채와 검은 동공의 살벌한 대비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모든 게 불투명하고 불확실했다. 한 겹 덮인 겉피부가 밝은 데도 애매하게 옅은 색으로만 비치는 파란 핏줄 같은 걸 고려했을 때도. 그래, 불온전성. 정국은 지금 자신이 불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상공에서 땅으로 낙하시켜 너저분하게 흩어진 퍼즐처럼. 가장 중요한 대왕 조각이 없으니 뭘 맞출 수가 없었다. 삶을 재건시킬 주축이 없었다. 용기도 여건이 있어야 가지지.
객관적인 평가가 좀 절실했다.
햇빛이 진했다. 촘촘하게. 땅 아래 있는 것들을 다 태워버릴 심산인 것 같았다. 지금 16세 청소년이 어떤 사회적 부조리함과 싸우는지 관심을 가지진 못할 망정. 빛에 닿는 곳들이 모조리 아지랑이로 휘발되어 버릴 것 같았다. 무릎 위에 쭉 뻗은 팔을 올리고 그 안에다 고개를 묻어버렸다. 이제는 뒷목이 따가웠다.
일. 물개의 행위예술에 대한 신랄한 비평
정국은 머리가 좋은 편에 속했다. 한 번 본 것들은 주로 잘 기억했다. 딱히 비교랄 것을 할 여건은 되지 않았으나 그냥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아주 비상하고 첨예하다고. 그치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뇌에 주름 더 많다고 달동네 꽃거지 생활이 청산되는 건 아니었다. 일수하러 온 사람들이 구구단 좀 잘 외운다고 기한을 늘려주는 것도 아니고 언변이 좀 좋다고 해서 선심껏 빚을 까주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요한 건 동물적 직감이었다. 구태여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 없는 것들. 천재들도 가난하댔는데. 왜일까.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가 부르고 열량이 들어가야 뇌도 부드럽게 일을 할 것이 아닌가. 정국은 가끔 자신의 뇌가 삐걱삐걱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삼각형 바퀴가 달린 마차처럼. 삐걱, 삐걱. 그러다 종종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비상한 머리와 충분한 돈, 이 둘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정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돈이었다. 좋은 머리 딱히 굴릴 데가 없었다. 맨날 나다니는 길은 머리가 아니라 발이 기억하고,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보면 배만 더 고파졌다. 차라리 조금 멍청해지고 쉽게 살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클럽이 있다. 쉽게 말해 그냥 유흥주점이었다. 뭐라 통칭하기도 뭐한. 남사스러움을 즐기러 오는 곳. 가끔 자주 보이는 누나들 의상 착의나 이름 읊어주면 예쁜 애가 머리도 좋다며 몇 번 쓰다듬을 툭툭 얹어줄 뿐이었다. 손길이 닿는 곳은 정수리일 때도 있고, 귀, 어깨, 허리 등등. 별 반전 없이, 그 밑으로도 있었다. 담백하지 못한 손길이었다. 모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열여섯 이래도 키가 170 초반을 웃돌았다. 정직하게, 순수한 귀여움을 받을 나이는 지났다.
돈 많은 호구. 아니지, 돈이 많으면 호구가 아니다. 호구를 잡히는 거지. 이 구역 모두가 통상 돔페리뇽이라 불렀다. 그 여자가 한 달에 한 번은 꼭 '코르크 뽁 따개식'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돔페리뇽은 쓰다듬 대신 정국의 바지 밴드에 돈을 쑤셔 박곤 했다. 그러고서 밸리댄스를 춰보라고 했었다. 정국은 그냥 했다. 이런 게 재밌나 싶었다. 그 정도 돈이면 얼마든지 고급진 취미들을 즐길 수 있을 텐데 굳이. 정국은 그게 의문이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왜 저열한 것들을 즐기는 것인지. 밸리댄스는 배운 적이 없어서 대충 허리만 흔들었다. 다들 좋아했다. 살과 몸들이 엉키고 섞이는 사이에서 정국은 찰랑찰랑 행위예술을 계속했었다.
정국은 그때 자신이 동물원 물개 같다고 생각했다. 재롱부리고, 떡밥 몇 개 던진 거나 받아먹고, 또 재롱부리고 흔들고. 싫다고 나갔으면 됐는데. 식대를 책임져주지도 않는데 굳이. 왜였을까 추정해본다면, 돈을 번다는 행위에서 향유 되는 만족감,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반사회주의적인 자신에 대한 자긍심, 아마 딱 그 정도였다. 거기서 까지 지긴 싫었다. 알몸으로 번식기의 밀림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마담은 가게에서 일을 하라고 정국을 꼬드겼다. 매번. 그리고 정국은 그 제안을 매번 거절했다. 그럴 거면 왜 앞에서 알짱거리냐는 물음엔 그냥 심심해서 그렇다고 했다. 사실 정국은 사람 손길을 타는 게 좋았다. 정수리에서 시작한 손길이 어디를 지나고 어디를 쓸고 나서야 멈추든 간에, 정말 별 상관없이.
공이 몇 개인지 너댓 번은 곱씹어봐야 할 액수였다. 한 장은 탁자 유리 밑에다 끼워놓고 자린고비처럼 출출할 때 보며 밥을 먹었고, 나머지는 개가 물어뜯는 바람에 낙엽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정국은 팬티를 내리다 변기에 돈을 빠트린 전적도 있었다. 고고하게 물위를 떠다니던 게, 종에는 부흥에 실패한 나뭇잎처럼 꾸역꾸역 물에 잠겼다. 변기 끝바닥 유리에 붙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폐 위에 소변을 갈기는 일은 묘한 죄악감과 간간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화류계 돈의 흐름이 방배동 어딘가에서 우뚝 우뚝 멈춰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 동네 슈퍼에선 수표로 아무것도 못 샀으니 효용의 가치가 제로였다. 아편 태우는 종이로 라도 쓰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대체로 지폐는 불에 그을리면 플라스틱 타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종이쪼가리라곤 하지만 본질부터가 종이와는 다른 것이었다. 굴비 대신 수표를 본다고 해서 군침이 도는 것은 아니었다. 정국에게 수표란, 종이 이상 그리고 스팸 미만. 위에 쉬하면 기분 좋은 거.
심지어 이곳은 줄곧 관광지가 된다. 알 사람은 알았다. 방배동 성뒤마을. 안 그래도 서울이라 튀었다. 가만 보면 달동네에 로망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왜지?
정국은 항상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몸 뉘일 곳도 없고 노숙에 지쳐서 자가 주택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평균 1.5인치가 넘는 바퀴벌레와의 동침을 꿈꾸거나, 이빨이 종유석같이 울퉁불퉁 난 목줄 없는 들개와 눈싸움을 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말이다. 정국이 사람들은 정말 못됐다고 생각하는 가장 거대한 이유는, 남의 빈민을 유흥으로 삼는다는 것에서 탄생했다. 낙후된 공간에 굳이 발걸음해, 반반한 옷을 걸치고 사진을 남긴다. 그 한 프레임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능욕 당하는지. 불규칙한 셔터 소리가 심장을 얼마나 매섭게 조여 오는지. 그것들을 알까. 차라리 돌을 맞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고작 저런 것들을 하려고 치부를 들추곤 했다. 그치고 그 치부는 이곳 사람들의 삶 전반에 만연해 있다. 노숙자의 집이었던 곳, 돈이 없는 예술가의 캔버스였던 곳, 술에 취한 꼬장뱅이 아님 누군가의 변기였던 곳. 그 위에서 손가락을 브이로 쫙 펴고서 웃는다. 가끔, 정국은 그 브이가 빅토리의 브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여긴 아직 사람이 사는데. 신축 주상복합 세탁소 앞에서 셀카를 찍는 사람이 있을까? 자기 집이면 몰라. 일정 범위 밖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그저 유흥 거리다. 당사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채 개장되는 미술관 전시회처럼.
이. 손익분기점에 투항하는 어느 불행포르노
생각을 오래 끌었다. 검은 정수리는 팔로 반은 가렸음에도 유난히 열을 빨아들였다. 포크레인 쇼벨 끝에 덜렁덜렁 연결된 버킷이 판자를 으스러트렸다. 정국은 저 포크레인이 태양을 쫓아냈으면 했다. 흰 살은 어둡게 타지도 않고 아프게 벗겨지고 짓무르기만 했다. 화상에 알로에가 그렇게 좋다는데.
샛노란 몸체 옆구리에 새겨진 볼보의 EW145B 프라임. 기억에 특히나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정국은 누군가 버린 담배를 주웠다. 바스라진 가루들을 툭툭 털고 잇새에 물었다. 아래턱을 움직이니 담배가 까딱거리며 거무튀튀한 재를 흘렸다. 헤르페스가 있는 개저씨가 피던 건 아니었으면 했다.
불행포르노. 새로 정의할 단어를 찾았다. 기생충 박소담 최우식 보다는 더 거칠고 삭막한. 불쌍하고 풍족하지 못한, 가여운 자신. 정국은 이에 얼큰하게 취했다. 정신 멀쩡히, 재미없게 또 맛없게 취하는 방법이다. 동정은 자기 자신에게만 용인되곤 했다. 남이 저를 불쌍히 여기는 건 달갑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의 동정은 자기연민에 가깝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때 말쑥하게 생긴 남자가 라이터를 건넸다. 시야 안으로, 손가락이 곧고 손톱이 정갈한 손이 훅 침투했다. 그 적막 속에서 포크레인은 계속, 계속 일을 했다. 세상이 잠시 느리게 굴렀다. 들리는 모든 소음들이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고, 눈은 점점 선명해졌다. 아찔해질 정도까지. 그리고는 귀가 도로 말끔히 트였다. 정국은 울어야 할 것 같았다. 간절히 소나기를 바랄만한 상황이었다. 실제로도 비나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날이 너무 환했다. 지나가는 구름이 정국의 얼굴에 그늘을 펼치고 접길 반복했다. 라이터는 검은색 바디에 금장이 들어간 석유 라이터였다.
"저 열 여섯인데요."
정국의 말에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니,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긴가민가 했으나 지금 정국에게 남자의 성별 따윈 상관 밖의 일이었다. 여자치고는 선이 굵고, 남자치고는 선이 부드러웠다. 보통 맞는 일인가, 나이가 어떻든, 앳돼 보이는 애 말리지는 못할 망정 불을 빌려준대. 고개를 끄덕인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탐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느꼈다. 몇 년 만이었다. 정국의 바운더리 안에 사람이 새로 들어온 것은.
"열여섯이라니까."
"들었어."
"그럼 왜 안 말려요?"
"내 맘."
놀리는 듯 했지만 말투에 장난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좀처럼 뵈지 않는 얼굴이라 나이가 가늠이 안됐다. 첫인상에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안개 같았다. 정국은 그가 팔뚝 매만지며 추근덕대던 클럽 문지기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걔는 그냥, 쭉정이 색마. 그래, 부인하고 싶었으나 돔페리뇽 누나보다 에뻤다. 색을 다 빼앗긴 조화 같았다. 살아있는 꽃 같은 게 아니라, 바싹 마른 꽃잎처럼. 나시 한 장에 냉장고 바지 걸치고도 머리칼이 검게 젖은 정국에 반해, 남자는 위아래 새카만 슈트에 해바라기 블라우스를 입고도 말짱했다.
"안 더워요?"
"더워."
"근데 옷은 왜 그렇게 꽁꽁 싸맸어요?"
정국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햇빛 때문에 저절로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정국을 보지 않고서 대답했다.
"직업 특성상."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뭉개지던 발음의 원인인 연초를 빼고 손가락에 끼웠다. 남자는 금장 라이터를 도로 바지춤에 넣었다. 발목이 얇았다. 흙바닥에 찬찬히 지는 그림자를 보던 정국은 돌연 초연한 표정을 했다.
"내가 만약 죽고 싶으면요.”
“·········"
"난 돈도 없고 집도 잃었고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
"몸으로 재롱 피우는 것도 질렸어요."
"미안하다."
···뭐가요? 정국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정국의 삶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자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또 면박주려고 한 것도 아닌데. 되려 머쓱해진 정국은 그게 달갑지 않았다. 자신의 말문이 막히려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으나 딱히 짚이는 것도 없었다. 사과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고작 그것 때문에? 정국은 자신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며 충분히 달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막무가내 철부지 같이 느껴져 혈압이 뚝 떨어졌다. 초면인 사람이 던지는 사과 한마디면 말이 턱턱 막히는 그런 철부지.
"사회가 그렇잖아, 너가 이러길 바라진 않았을 거 아냐."
"···진짜 가식적이다. 아저씨가 뭔데 사과를 해요?"
"필요하잖아, 그런 거."
아냐? 남자는 정국을 바로 보았다. 이제야 정면이 좀 보였다. 코만 높은 줄 알았는데 반반한 얼굴이었다. 속눈썹이 길었다. 위도 아래도. 정국은 콩팥이 필요한 거냐 물었다.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고 물었다. 손으로 뺨이든 어깨든 붙들 예정이었는데 팔을 올리자마자 정국이 눈가를 타닥 떠는 바람에 팔은 무릎 위에 올렸다. 대신 눈높이를 맞춰 앉았다.
"콩팥이 왜."
"그럼 나한테 왜 관심을 줘요."
"달라면 줄 거야?"
"네."
"그럼 나중에 받아갈게."
"나 빈말 안 해요."
"빈말이라도 해."
말이라도 가벼워야지. 애들이 불쌍한 게 뭔지 알아, 너무 일찍 철든다는 거야. 근데 그걸 애들은 몰라. 자랑스러워하더라. 남자는 말을 이으며 여물린 두 번째 단추에 매달아 둔 선글라스를 스윽 뺐다. 검은색 선글라스 다리가 귀와 머리칼 사이를 부드럽게 갈랐다. 그러곤 정국처럼 팔을 쭉 빼 무릎 위에 얹고 고개를 작은 각도로 틀었다. 매끈한 태닝 렌즈에 인부들의 파란 옷이 선명하게 비춰졌다. 정국은 공사판을 직관하는 대신 그게 세상의 창인 것처럼 굴었다. 안에서 밖이 보이는 것은 생각 않고 남자의 렌즈를 응시했다.
"정국에 밭 전을 쓰네."
"·········"
”맞지.“
”·········“
김이 딱히 감기진 않네.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정국의 손가락 사이에 의지 없이 붙들려있던 담배를 뺏어들었다. 가루가 파스스 떨어지는 담배를 검지로 손바닥 안에 밀어 넣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나 알아요? 응. 으음. 정국은 무성의하게 리액션하며 그 크지 않은 움직임들을 모조리 눈에 담았다.
"피지 마."
"왜요."
"너 꺼야?"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 미간을 찡그리고 갸웃했다.
"간접키스."
아깐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그랬는데, 이건 좀 독한 담배라. 검은 바탕에 노란 해바라기들의 대가리가 정국을 향해있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그 프린팅들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착각도 들었다.
"설교하려면 통성명 정돈 해야지."
"아저씨, 김 씨죠."
"···그렇게 생겼지."
"네."
"김태형이야. 클 태에 형통할 형."
"딱히 유도리 있게 생기진 않았는데."
초면에 못하는 말이 없네. 초면이니까요. 그치. 남자는 뒷목을 한 번 길게 쓸고는 목을 풀었다. 관절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위협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표정이 정말 찌뿌둥한 표정이었으니까. 정국은 그 사이 머릿속으로 태형의 이름을 한 번 굴렸다. 중간이 강하고 끝이 동그란 이름. 사람은 이름 따라 크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살라곤 안 해. 죽진 마라."
산다는 거의 반의어가 꼭 죽는 것도 아니더라. 태형은 그렇게 말했다. 딱히 장엄하지도 위엄 있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정국의 물음에 태형은 또 직업 특성상이라고 대답했다. 정국은 직감했다. 아버지의 채무를 독촉하러 오던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구나. 그래서 묻고 싶었다. 그 인간 유언이라도 남겼는지. 마지막 방문에 자신의 이름을 언급이나 했는지. 나중에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 해달라는 부탁이나 했는지.
"아빠가 뭐래요?"
"기억 안 나."
"전 씨가 흔한 이름은 아니잖아요."
"난 사람 얼굴로 외워."
"나한테 미안하대요?"
"·········"
"아님 내가 거치적거리는 짐짝 같았대요?"
"그런 말은 안했어."
"기억 안 난다면서요."
다 기억하진 않지. 아저씨 그럼 저 사람들 알아요? 정국은 손 끝으로 인부 두 명을 가리켰다. 태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고 했다. 같이 왔으니까 당연히 알지. 정국은 저 사람들 그럼 이름이 뭐 게요, 라고 물었다. 태형은 고민하다가 '강석태', '임준병' 이라고 했다. 정국이 몸을 일으키고 인부들에게 다가갔다.
”먼지 날리니까 가지 마.“
”시늉만 한 거였어요.“
정국이 눈을 흘겼다. 태형도 몸을 일으켰다. 태형이 먼저 집을 나갔다. 있을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 앉은 자리 비니까 이제 서야 눈에 들어오는지, 인부들은 동시에 대문 없는 담을 쳐다봤다. 태형은 쌔끈한 발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따라오란 소리도 안했다. 정국은 태형을 따라 나갔다. 나가는 내내 목만 돌려서 인부들과 눈싸움을 했다. 의문과 긴장을 주고받았다. 물론 정국만 손해였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자, 바로 태형의 뒷모습을 향해 질주했다.
삼. 하와이안 피자 같은 기호성
정국은 의자에 무릎으로 앉아 턱을 괴고 고갤 주억거리며 폰팔이에게 붙들려 있었다. 따발총처럼 말을 쏘아대는 폰팔이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고개를 약하고 오랫동안 끄덕거렸다. 신중히 듣고 있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이 상품은 저장 공간이 오백십이 기간데, 2년 약정 후에 기기 반납을 하고 새로운 모델을 받아가는 프로모션이 있어."
"프로모션이 뭐예요?"
"좋은 거. 부모님은 어디 계셔?"
"부모님? 안 계시는데요."
정국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마치 ‘오늘 아침 뭐 먹었어? 아침 안 먹었어’같이 자신의 부모의 부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의 해마에 골인시켰다. 폰팔이의 표정이 뜨거운 드라이기 바람을 삼 분 가량 쐬어준 액체 시멘트만큼 굳었다. 정국은 결국 보다 못한 태형의 손에 끌려나왔다. 너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가정사를 다 불면 어떡해. 내가 뭐요. 아, 더워. 정국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넥라인을 쭈욱 잡아당기고 펄럭거리며 새로운 공기를 미지근하게 데워진 가슴팍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태형은 손도 움직이기 귀찮아서 그냥 눈만 가늘게 뜨고 걸었다.
눈이 크니 유입되는 빛의 양도 많았다. 태형 역시도 여름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다른 계절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긴 했으나, 따지자면 추운 게 더 나았다. 여름은 벗어도벗어도 더웠다. 그리고 벌레. 여름엔 알 까고 나오는 것들이 특히나 많았기에. 눈꺼풀과 눈썹 사이의 그 언저리가 시큰시큰 뜨겁게 시렸다. 간간히 보라색으로 시야 밖이 점멸했다.
“왜요, 저 좋은걸 혜택까지 빵빵하게 준다는데 왜 안 사?”
“조용히 해. 너 니 입으로 촌놈이라면서 왜 이렇게 무모해.”
“노래가 좋아서 물어보러 갔다가 잡힌 거예요.”
“그게 뭐였는데.”
“벌레 먹은 사과 있는 거 설명 듣느라 못 물어봤어요. 그건 무슨 브랜드에요? 파인애플?”
“어.”
“뭐래, 애플인 거 다 아는데.”
“알면서 왜 물어.”
“심심하니까요. 더운데 강아지처럼 혓바닥 쭉 빼고 다닐 순 없잖아요. 아저씨가 쪽팔리다고 버리고 갈까 무서워서.”
“안 버릴 건데, 그러고 다니진 마.”
“그러니까 말 많이 해서 열 뺄라고.”
의기에 차 말했던 정국은 머지않아 더위에 굴복했다. 입을 꾹 다물고 발을 직직 끌었다. 나시에 냉장고 바지였으면 버틸만 하려나. 태형과 정국이 한 집에 산 이후로 주말이 두 번 지나갔다. 정국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태형의 동그란 뒷통수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태형은 더위와 씨름하기 바빴다. 그러나 더위가 가신 겨울이었어도 당연히 듣지 못할 거였다. 정국은 폰팔이가 준 살얼음 낀 삼다수 병을 목에 끼웠다. 서려있던 물기가 옷 안으로 미끄러져갔다. 아직 7월 말이었다.
인부들과 눈싸움을 하고 나온 다음, 정국은 정처 없이 태형만 따라갔었다. 처음엔 터벅터벅 자갈 끌리는 소리가 휜히 들리도록 걷다가, 중간부터는 태형이 발을 떼야 자신도 발을 떼었다. 태형은 한 번도 뒤를 돌지 않았다. 정국의 집에서 나온 이후 땡볕 아래 삼십분을 내리 걸어, 탈진 직전 가까스로 차에 도착했다. 운전석에 앉아 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나름 그늘가에 주차를 했는데도 낮이 짧아 그새 차 왼쪽에는 해가 한창 들어오고 있었다. 에어컨을 18도에 맞추고 최대 풍속으로 틀었다. 미지근한 바람이 필터를 통과했다. 단추를 한 단 풀었다. 정국은 왼쪽 뒷좌석 바깥에 동태눈깔로 서있었다. 손잡이에 손을 댈까 말까 고민하는 듯 했다. 애가 싱거워. 중얼거린 태형은 슬그머니 뒷좌석 문 잠금을 풀었다. 정국이 손잡이에 손을 뻗은 타이밍과 아다리가 적절히 맞았다. 뺀치 없이 차에 태형과 동승하게 된 정국은 아무런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태형이 슬쩍 백미러로 보니 열이 올라 양각이 죄다 발갰다.
"오른쪽으로 앉아."
"·········"
"잘만 떠들더니."
"······이상한 냄새 나요."
"·········"
아무리 그래도 아직 홀애비 냄새 날 나이는 아닌데. 태형은 잠시 숙연해졌다. 소매를 들어 숨을 들이켜 봐도 보송보송한 냄새밖에는 나지 않았다. 이 차에서 그런 냄새가 날 수가 없는데. 영칸데 이거, 영카. 정국은 눈을 감고 몇 번 더 킁킁대더니 조수석 시트를 잡고 몸을 당겨 와 말했다.
"쓰고 이상한···몰라요."
쓴 냄새가 무엇일지 골똘히 고민하던 태형은 최대한 웃음을 참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죽냄새야. 가만 생각해보니 그리 웃기지도 않았다. 정국은 등이 따가운지 시트에 몸을 기대지 않았다. 밀랍인형처럼 방지턱 마다 몸이 덜렁덜렁 기울었다. 태형은 조수석에 있던 납작 방석을 뒤로 넘겼다. 정국은 방석을 가만 보더니 먼지를 두 번 팡팡 털고 등 뒤에 뒀다. 10분 정도 지나니 찬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합이 들어가 있던 정국의 미간도 다림질 하듯 조금씩 펴졌다. 태형은 신호가 멈춘 틈을 타 측면으로 돌고 물었다.
"짜장면."
"······"
"먹을까?'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등을 편하게 기대려고 애썼다. 시트에 가까이 가면 쓴 냄새가 진하게 나기에 정국은 진작에 이건 시트 냄새겠거니, 했다. 시트 냄새가 아니라, 다른 냄새. 꼭 돔페리뇽의 친구들이 뿌릴법한 그런 냄새가 났다. 특히 방석이 꾹꾹 눌릴 때마다. 불쾌함과 호기심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빨라지는 심박수에 집중하다보니 까무룩 잠에 들었다. 중국집 앞에서 차를 세운 태형은 뒤를 돌아보곤 문을 조용히 열고 내려 짜장면 하나와 짬짜면 하나, 그리고 탕수육 중 자를 주문했다. 배달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방 아일랜드에 팁을 얹어두고 나왔다. 됐다고 사양하는 사장을 도로 들여보냈다.
사. 방배동 너구리의 모르핀 밀수
송파구의 40평 아파트. 역세권. 그리고 맥세권. 설명하자면 이게 다였다. 장점 딱 하나 더 찝자면 보안이 좋은 집이었다. 주민편의시설이 꽤 괜찮았다. 태형의 카드키를 들고 단지 내 헬스장에 다녀온 정국은 태형이 개어놓은 수건 중 하나를 집어 머리를 탈탈 말렸다. 태형은 얼굴을 살짝 구겼다. 정국은 태형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내심 머쓱했는지 털썩 앉아서 빨래 개는 것을 도왔다.
"정국아."
"예."
"학교 안 가?"
"가고 싶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니에요?"
잠시 멈칫한 태형은 손에 들린 양말을 포개어 동그랗게 말았다. 그러네. 뭘 그러네야, 싸가지 완전 없었는데. 건조한 태형의 대답에 나지막이 툴툴댄 정국은 쭉 벌린 다리 끝을 보고 발톱 자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태형이 정국을 이 집에 처음 데려온 날, 태형은 정국이 잠에 들기까지 기다리고는 발톱을 깎았다. 중간에 깬 정국은 성의껏 자는 척을 했었다. 타각타각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동그래진 양말을 빨랫 더미 위에 올려두고 태형은 정국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국은 여전히 발끝을 보고 있었다.
"가고 싶어?"
"별루."
"참 별나다 너도."
"학교는 왜요."
"근처에 갈 데 있어서."
"학교에?"
"동사무소."
태형은 차곡차곡 개어둔 빨래 절반을 떼어 들고 일어섰다. 정국은 자신의 빨래를 모아 방으로 가져갔다. 흰 양말만 덩그러니 거실에 놓여있었다. 수건을 빨래통에 넣으려던 정국은 태형이 있는 안방과 양말을 번갈아 보았다. 사용감이 없지 않았다. 이거 아저씨 거예요? 정국이 양말을 집어 태형에게 보여주고는 물었다. 태형은 양말을 풀어 살펴보고는 도로 말았다. 모르겠네.
정국은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차양이 좋은 방이었다. 바닥 요에 정갈한 햇빛이 사각형으로 내려앉았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누웠다. 하루하루 간신히 풀칠만 하다 갑자기 멀쩡한 집이 생겼다. 사람도 생겼다. 정국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마땅히 할 게 없없다. 그렇다고 도어락을 혼자 열 수 있는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라 밖에 나돌아 다니지도 못했다. 할 수 있는 게 운동뿐이라 나름 근육이 붙었다. 태형은 정국에게 운동이 체질인 것 같다고 했었다. 머리 뒤로 팔짱을 끼고 있다 보니 잠이 왔다. 눈을 도로 뜨니 밤이 깊어가는 중이었다. 신도시에는 전선도 전신주도 없었다. 정국은 이것을 제일 신기해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정국은 슥슥 끌리는 발로 집안을 돌아다니다, 인기척을 따라 베란다로 나갔다. 태형의 진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냄새가 배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태형은 늘 담배를 가까이했었다. 라이터를 돌리는 재주가 꽤 수준급이었다. 라이터를 태형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옮겨와 덮개를 몇 번 딸깍이던 정국이 말했다.
"나도 한대 줘요."
"너 미자잖아.“
치. 정국은 입을 대놓고 삐죽거렸다. 그럴 거면 앞에서 왜 그러고 있는 건데. 태형은 종종, 암묵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것들에 정국을 무방비하게 노출시켰다. 그리고 늘 그 안으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아저씨 요즘 애들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알면 까무러치시겠네. 얼굴은 개방적으로 생겼으면서. 예전부터 느낀 건데 꽤나 보수적이네요."
"언제부터 봤다고 예전이야."
"···왜 피지 말라는 건데요."
"건강에 안 좋으니까."
"어차피 이거 피고 아저씨한테 맞아 죽나, 폐 쓰레기 되고 늙어 죽나···"
"그래, 콩밥이 몸에 좋다더라."
따박따박 대들던 정국은 표정 변화 없이 태형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태형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내가 때리면 아프기나 하겠냐? 근육도 없고 운동도 안하는데. 골프도 안 쳐요? 안 쳐. 왜? 재미없는 건 안 해. 음.
"맛 없어."
태형은 이유를 고르고 골랐다. 정국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설득은 물 건너간 것 같았다. 가만 보면 신경을 박박 긁는 면이 있었다. 구김살이 없어서 화를 못 낼 뿐이지. 따지자면 남의 자식이고 필요 이상의 간섭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담배를 피든 말든. 그러나 이 말은 가급적 하지 않기로 했다. 정국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나 모험하는 거 좋아해요."
"빨리 죽어."
"내가 내일 안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아저씬 밥 혼자 먹고."
"어?"
"당장에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인데."
”너···“
태형은 어깰 한 발 뒤로 빼고 정국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손으로 이마를 쓸어 넘기고서 숨을 크게 뱉었다. 피로가 훅 밀려왔다. 애들은 피곤했다. 그 중 대다수는 질문이 너무 많은 게 이유였다. 그 한숨은 무슨 의미에요? 라고 묻는 정국에 대답 대신 담배를 지져 꺼버렸다.
"넌 가끔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말장난."
정국은 씨익 웃었다. 하얀 앞니가 팽팽하게 당겨진 윗입술 밑으로 빼꼼하게 튀어나왔다. 그게 당연 태형의 시선을 끌었지만, 태형이 자기 앞니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정국이 자각한다면, 더 이상 크게 웃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태형은 필사적으로 정국의 하관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오락가락했다. 그렇다고 올라가진 않았다. 태형은 죽지 마, 와 비슷한 음절을 말했다. 작게 한숨 쉬듯 중얼거리려고 했으나 높낮이 없이 쭉 직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뭔 의미냐니까요. 정국은 재차 물었다. 진짜 약았다 너. 김태형은 한쪽 눈을 찌푸리고 웃었다. 눈과 오른쪽 입꼬리만 올렸다.
"야. 오래 살아."
"·········"
"천재들은 요절한다더라. 오래 못 산대.”
“무슨, 내가 천재에요?”
“구르는 재주라도 있겠지.”
"···그래서요."
"꼰대 같냐?"
"조금."
"그래···. 여긴 그냥 아저씨 하나 사는 삭막한 집이지. 넌 식객 신세고. 꼬우면 돈 벌어서 집 사."
"·········"
"정국아. 오래 살아야 복수든 뭐든 시도라도 한다."
멍하게 정면을 보며 말하던 태형은 발이 시린지 잠시 밑을 보고 발등을 종아리에 문질렀다.
"복수는 와인이야. 묵혀두고 잊고 있어야 좋은 거야. 그렇다고 상하지는 않잖아. 오래 사는 것도 복수야. 지옥에서 고스톱 할래? 노잣돈도 없으면서 야. 정 그러면 도굴 하러 가던지. 요즘은 납골당이 더 많은가?"
"·········"
"진짜 하진 말고. 대답이 없어···"
태형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있던 타다 만 연초를 밟아 꺼 버리고, 혹여나 정국이 그걸 다시 주을까 싶어 일반 쓰레기봉투에 박아버렸다. 그리곤 지나가며 정국의 다물린 입술 사이를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살포시 누르고 들어갔다. 자각 못하지,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발코니 문이 닫혔다.
정국은 그 자리에 한참 서있었다. 입술을 만지다가, 탈락하는 각질들을 이빨로 잡아 뜯다가 피가 나고, 입김으로 도넛을 만들어보려는 노력도 하고, 신발 앞코를 톡톡 건드리다 고개를 팔짱 사이로 묻어버렸다. 오래 살아라... 정국은 말을 곱씹었다. 팔짱 아래 가려진 얼굴 표정은 그저 건조하기만 했다. 비가 지나간 사막 같았다. 물이 다 마른 오아시스 같기도 했다. 신기루 같은 속눈썹이 팔락거렸다.
혼자 여름 바람을 맞던 정국은 낮에 태형이 했던 말 때문인진 몰라도 문득 학교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맨날 집에서만 빈둥대어 봤자 정말 식충 신세 그 이하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 탓이었다. 태형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도 아니라 심심도 했다. 낮잠을 못 자는 건 아쉽지만.
“학교 갈래요.”
“간다고? 아까는 별로라며.”
“그냥.”
“그래 그럼.”
태형은 정국의 앞으로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직영점에 가서 일을 마쳤다. 그때 그 덤태기 씌우던 그 폰팔이는 기피 대상 1순위였다. 태형은 정국이 그 앞을 지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정국은 별 반항 없이 순응했다. 둘은 동사무소에 들려 등본을 떼었다. 정국은 아직 열여섯이었다. 만 나이로는 열네 살 이었다. 정국은 뒷좌석에 앉아 등본만 물끄러미 바라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실거주지가 방배동이 아니었다.
“다음 주에 누가 집에 올 거야.”
“누구요?”
“···그때 봐.”
“응.”
“누나야.”
“아줌마?”
“아니.”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고, 정국이 하교하고 돌아왔을 때, 전엔 보지 못했던 녹색 컨버스하이가 현관에 놓여있었다. 태형의 신발 치고는 사이즈가 한참이 작았다. 태형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름에 튀기다시피한 계란후라이와 납작 방석 냄새가 났다.
“안녕.”
연갈색 칼단발을 한 여자가 몸을 틀어 정국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국은 겸연쩍게 고개를 툭 끄덕였다. 여자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인상이었다. 눈썹이 옅었다. 정국은 여자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동류의 느낌.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가방끈을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 살아요?”
“일단은.”
이름은 미도라고 했다. 이미도. 나이는 스물에 고등학생. 일 년 꿇었다고 했다. 잘생겼네. 미도는 태형을 팔로 건드리며 말했다. 낮춘다고 낮춘 볼륨이었지만 그 말 이후로 정국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미도는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정국은 의자 밑으로 발을 꼬았다. 진정한 외부인이 된 듯한 기분이 낯설었다. 박힌 돌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굴러온 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목을 넘길 때마다 속에 얹혔다. 아직도 태형의 나이를 몰랐다.
오. 매미와 우울의 상관관계
미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다. 정국의 적대인 듯 아닌 듯 한 태도와 내심 걱정했던 태형의 우려와는 다르게 미도와 정국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과묵해 보이는 인상이던 미도는 의외로 다언자였다. 오히려 정국이 말을 많이 줄였다. 빨래를 걷던 정국은 미도의 브라자를 마지막으로 두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차곡차곡 개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은 다음에도 계속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미도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눈이 마주쳤다. 미도가 왜냐고 묻자 정국은 말없이 손 끝으로 건조대를 가리켰다.
“팬티는 잘도 내놓으면서 유난이야. 부끄럽냐?”
”아니.“
갖다 놔달라고 하면 안 할 거지. 응. 별 기대도 안했다는 듯 미도는 브라자를 휙 걷어갔다. 귀찮다, 그냥 다 버릴까봐. 손에 걸려 축 늘어진 것을 보던 미도는 말했다. 그걸 왜 버려? 정국이 물었다.
”갈비뼈도 휴가를 줘야지.“
“휴가?”
“여름 바캉스.”
”······“
왜. 떨떠름해? 정국은 대답 않고 눈썹만 팔자로 만들었다. 미도는 하, 하고 웃었다. 걱정하니? 아니. 너가 브라자야? 아니. 그럼 왜 서운해해. 정국은 이런 거엔 꼬박꼬박 대답했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다 했어, 저거. 꼴에 그 단어를 입에 담기는 뭐 한지, 정국은 브라자를 저거라고 칭했다. 미도는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국은 미도에게 좀 큰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였다. 밉지는 않았지만 곱게만 보이지도 않았다. 니가 여자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응. 정국의 새카만 눈동자가 물끄러미 미도를 향했다.
“유감인데, 이 세상 여자들 인구밀도가 다 방배동에 몰려있는 건 아니거든.”
”알아.“
“불편해서 안 하는 거야.”
”그럼 만유인력에 반항하는 거야?“
뭐? 미도는 우스움에 얼굴을 구깃했다. 가슴 쳐진다는 소리를 예술적으로 하네. 만유인력을 거론하며 묻는 얼굴이 정말 두부 같은 낯이 아니었다면, 미도는 정국에게 하다못해 딱밤이라도 한 대 놨을 것이었다.
“그래, 말년에 유방암으로 고생하긴 싫거든. 할 일 없음 김태형 옷 좀 세탁소에 맡기고 오던가.”
”어떤 거.“
“저 해바라기 셔츠.”
“저건 왜?”
“구겨놓으면 주름 생겨.”
”저거 자주 입는 옷 아니야?“
“잘 안 입어. 깡패 같다고.”
근데 넌 왜 아저씨보고 김태형이라고 해? 태형의 셔츠를 왼팔에 건 정국이 미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미도는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너도 나 누나라고 안하잖아. 곰곰이 되짚던 정국은 고개를 뻣뻣하고 느리게 두 번 주억거렸다. 이제야 자각한 일이었다. 다시 묻고 싶었으나 미도가 더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입을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더 따져들 그럴 입장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방배동 살던 걸 미도가 왜 알지. 그것만 궁금했다. 김태형이 말했나? 딴 생각을 하며 발을 움직이니 어느새 세탁소를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도는 집에 없었다. 기숙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침에 말했었다. 그렇다고 인사도 없이 가냐. 직전의 대화가 하필 속옷에 대한 것이라 썩 후련하진 않았다. 미도의 방은 안방에서 제일 가까운 방이었다. 문을 열어보니 침구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불을 개어 놓은 걸 보니 태형의 솜씨는 아니었다. 미도는 일찌감치 실업계로 빠져 대안학교에 다녔다. 세상물정에 약한 정국에게 너 요즘 청년 취업률이 얼만 줄 아냐고, 힘들게 대학 나와서 한 평짜리 마카롱가게 차리는 건 너무 슬플 거 같다고도 했다. 젊음은 휘발된다고. 마지막 말은 꽤 인상적이었다. 태형은 거실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아 홈쇼핑을 보고 있었다. 남자 가을 코트가 선전 중이었다. 정국은 화면과 태형을 번갈아 보았다. 옷을 어벙하게 입는 편인 것 같았다.
집이 조용했다. 그러나 분명 티비 소리가 나고, 주방 팬 소리가 나고, 간간이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와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분명 소음들이 나는데도 조용했다. 정국은 문듯 머리가 핑글, 하고 짧게 도는 것을 느꼈다. 태형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형은 조금 거리를 두어 엉덩이를 옮겼다. 아저씨는 나 안 궁금해요? 정국이 물었다. 음··· 말 끝을 늘이는 태형은 패턴 없는 저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무던한 옷에 멋은 목도리로 내는 게 취향이었다. 정국은 태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기억 나는 사람이 하나 있어요.”
“응.”
“나 방배동에 살 때요.”
“응.”
“예전에 있었어요. 형욱이라고, 형이었는데, 이 동네에서 바둑이랑 황산이 빼고 내 친구는 그 형 하나였어요. 지금 뭐하고 살까요.”
”잘 살고 있겠지.“
“죽었어요.”
“미안.”
“아저씨가 왜 미안해해요, 죽인 것도 아니면서.”
“유감이라는 뜻이야.”
정국은 손톱의 가생이를 톡, 톡 잡아 뜯으며 본격적으로 기억을 풀기 시작했다. 거슬리던 눈칫밥을 깔끔하게 떼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작게 미소 지은 정국은 살밥을 머리 뒤로 넘겨버렸다. 태형은 조용히 티비 볼륨을 줄였다.
“저저저~번 여름에. 불에 타 죽었어요.”
“음.”
“그래서 내가 여름이 별로에요. 왜 그랬는지 알아요? 왜 그 뜨거운 날에 불난리가 났는지.”
“아니.”
태형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골든벨처럼 막 던져 맞출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믹스커피를 들고 있던 손이 둥실둥실 허공에 떠 있었다. 정국은 그 손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며 무릎을 모으고 말을 이었다. 손가락은 계속 손톱 옆을 뜯고 있었다.
“그 형이 짝사랑하던 누나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열세 살 이었으니까 그 형이 열다섯이었지? 그리고 그 누나가 열여섯. 몰라요, 어쩌다 그랬는지는. 어느 날 데이트하러 간다고 밀짚모자에 체크셔츠를 입고 나가더라고요. 우선 차였다고 봤어요. 지금도 별 다른 의견은 없어요. 아저씨는 뭐라고 생각해요.”
“글쎄.”
“그래요, 죽은 사람 흉보는 게 선행은 아니니까 뭐.”
정국의 검지에 제법 큰 거스러미가 걸렸다. 태형은 커피를 목에 쏟아 부었다. 1차적으로 닿은 혓바닥이 까슬해지기 시작했다. 뜨거움을 충분히 식히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입천장에 혓바늘이 닿지 않도록 혀끝을 앞니로 살짝 물었다.
“라면 한 봉지랑 가스버너를 들고 와서는 라면을 먹겠대요. 그 누나가 줬다면서. 참 센스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 여름 백주대낮에 누가 김 펄펄 나는 라면을 먹겠냐고. 더워 죽겠는데, 이열치열도 정도가 있잖아요.”
“·········”
“그래서 난 낮잠이나 잤어요. 그러다 애비가 들어와서 또 지랄지랄 하는 바람에 울면서 방에 기 들어간 거였지만. 콱 죽었으면 했어요.”
“·········”
“근데 죽은 담에 사후세계가 행복하지 않을까봐 두려웠고, 난 종교도 없고 따로 기도하는 신도 없는데 홀몸으로 지옥에 떨어지면···, 차라리 불구덩이가 낫지, 이런 인생을 무한으로 반복하게 될까봐 난 그냥···”
정국의 말이 뚝 멎었다. 태형이 정국의 손을 겹쳐 잡은 바로 그 시점에. 충동적인 행동이 맞았다. 태형은 이를 부인할 수 없었다. 자기가 해놓고도 아차, 싶어 아구에 걸린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국이 뜯던 거스러미가 끊어지지 않은 채 밑으로 깊게 패여 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구렁으로 빠져가는 것 또한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정국의 우울을 감당하는 것이 지금의 태형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약 가져올게. 네. 둘 다 딱히 놀란 기색이 없었다. 태형은 빈 종이컵을 구기고 일어서, 주방 선반을 뒤졌다. 피는 나지 않고 피하층 근처의 속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정국은 태형의 휘적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손가락을 입에 물고 쪽 빨았다. 선반 밑 아일랜드를 딛고 있는 태형의 손에 굵은 핏발이 서고 있었다. 정국의 입 안이 음압이 차고 오래 가지 않아 옅게 비릿함이 올라왔다. 피를 보고야 말았다. 환부 주변에 아주 미세한 붉은 반점들이 다닥다닥 생겨났다. 번들거리는 침을 닦았다. 자리에 도로 앉은 태형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프지.”
”···다친 줄도 몰랐는데, 눈물도 안 났어요.“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왜.“
”뭐가.“
”아저씬 왜 그렇게 대충···유하게 사는 거예요?“
”깎이기 싫어서. 그리고 대충 사는 거 아니야.“
”나름 성의가 있어야 되거든.“
”·········“
”어때, 지금은.“
”괜찮아요.“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태형의 손길이 떨어지자 정국은 밴드가 붙은 검지를 까딱까딱 하더니 손을 동그랗게 말았다. 마치 억지로 펴놓았던 것처럼. 사냥이 끝난 말미잘이 안으로 수그러들 듯이. 태형은 집 안에 있던 봉지라면을 다 처분했다. 그리고 컵라면을 궤짝으로 사놓았다. 국내산, 일본산, 중국산, 태국산,··· 정국은 양꼬치 향이 함유된 볶음라면을 꽤 좋아했다. 말은 안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쓰레기통에 빈 용기가 들어있었다. 미도는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물으며 너구리를 찾았다. 태형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전체 소등을 하고 나간 바람에 도서관에 갔다가 밤 늦게 돌아온 정국이 무서웠다고 면박을 줬다. 태형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웃음만 지었다. 미안, 이라고 했다.
미도는 기숙학교의 특징인지, 집에 자주 오지 않았다. 짧고 굵게 머물다 갔다. 태형이 간간이 면회를 가는 듯 했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태형이 옷 몇 벌과 너구리를 사들고 미도의 학교에 간 날, 정국은 태형이 떠난 집을 두 바퀴 순회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정국은 뭐든 확실한 걸 원했다 기면 기, 아니면 아닌 거. 어중간한 건 미치도록 싫었다. 그래서 싱크대 옆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면 불안한 충동이 일었다. 그릇들이 끼긱거리며 무너지고 깨질 것 같았다. 일종의 강박이었다.
그러다 태형이 떠올랐다. 전개가 빨라서 생각할 새 없었지만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었다. 연고도 없는 빚더미 거지를 집 안에 들이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도 보내고, 빚도 청산하고.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정국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태형은 정국에게 한 번도 빚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잘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 추측도 은연중에 아주 깊게, 저 아래에 깔려 있어서 다시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다. 원금만 대략 해도 이천만원이었다. 살인적인 이자가 겹치면 액수는 곱절이 될 거였다. 만약 태형이 그것을 해결했다면, 제 아비도 못한 것을 생판 남은 너무나 쉽게 해낸 셈이다. 정국은 생각했다. 그럼 김태형이 이제 내 부모이자 아버지인가? 그렇게 된다면 태형은 애비 말고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탐탁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정국은 아버지를 능력 없는 동거인 정도로만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뇌가 터지기 직전의 풍선같이 느껴졌다. 정국은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렸다. 턱 끝까지 차는 숨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달렸다.
돌아온 태형은 정국을 찾았지만 태형을 반기는 건 덩그러니 놓인 헬스장 키 뿐이었다. 애가 어딜 간 거지. 평생 붙어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아서, 언젠가 떠날 거라는 건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특별히 정을 쏟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밤인데. 채무자들이 얼굴을 모르지 않을 텐데.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태형이 시계를 보는 빈도가 늘어갔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태형은 문을 열었다. 정국이었다. 정국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깐 동안 그것에 시선을 뺏겨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관계를 정립하는 거 어때요?”
“···정리?”
“아니, 정립.”
정국은 들썩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또 짓누르고, 거의 무호흡에 가까운 상태로 눈을 마주쳐왔다. 독한 놈. 의연한 태형 앞에서 정국은 꽤나 위태로운 꼴을 하고 있었다. 난데없는 애굣살과, 광대와, 경직되어 올라간 과한 입꼬리, 그리고 이도저도 못간 채 방향을 잃은 진한 눈썹들이 그랬다. 절망과 희열이 충돌한 얼굴이었다. 정국은 마찰이 일고 번개가 치는 과도기의 미지공간 안에 있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나폴레옹의 표정이 저랬을까. 근육이 아닌 감정이 얼굴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형은 이런 류의 얼굴을 아주 잘 알았다. 멀찍이 떨어져있던 자신에게 기어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올려보던 이들의 눈빛. 자격 없는 어른의 눈. 그리고 대개 이런 사람들은 머지않아 자살했다. 밀려온 무언가에 숨이 막혀서. 자기가 몰락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정국이 왜 이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떡해요, 나, 애매한 걸 못 참아서,”
“·········”
“아저씨···”
태형의 표정이 점점 정국과 동기화 되어갔다. 태형은 아주 예전에, 한 가지 들은 찌라시가 있었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이자 이성의 마지노선 이상까지 절망이 차오르게 되면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분간할 수 없어진다는 이야기. 뭐에 한계가 온 걸까. 생각은 여기에서 멈췄다. 지금 당장 정국을 안아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집 안의 모든 금속들과 창문들에게서 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태형은 말없이 정국을 팔로 감쌌다. 당차던 고개가 뚝 떨어졌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떨어진 고개에 무게가 실렸다. 혹시나 무거울까 목에 힘을 주고 있던 정국의 탓이었다. 머지않아 품에서 사람 하나의 몫이 무너져 내렸다. 아저씨, 나, 사람이 너무 필요해요··· 매미는 여름이 다 지나서야 울음을 터트렸다. 아주 서럽게도 울었다.
육. 뜻이 확고한 병신은 사랑하지 말라 일렀다
2월. 정국의 중학교 생활은 끝이 났다. 밖은 눈이 오고 있었고, 미도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미도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집에선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자주 났다. 정국은 고등학교를 진학하겠다고 했다. 기숙사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미도는 쟤 무서운 걸 모른다고, 독기 없는 애들이 사행성쪽으로 많이들 빠진다고 했다. 독기. 머릿속으로 말을 곱씹어본 정국은 태형의 쪽을 쳐다봤다. 태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해외여행 패키지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홧김이었다. 정국은 미도가 다니던 대안학교 후배로 들어갔다. 다른 곳으로 가면 태형이 면회를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그러나 정국은 태형이 면회를 가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양꼬치 향 라면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임박해 기름 쩐내가 나는 라면들을 선반에서 쏟아낼 때 태형은 조금 복잡해졌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국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어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러다 불쑥불쑥 찾아왔다. 마치 계속 집에 있었던 사람처럼, 정국은 식탁에서 육포를 뜯어먹고 있었다. 태형은 조용히 정국의 앞에 앉았다. 의자 빼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봉지에서 육포 하날 꺼냈다가, 몇 번 씹고는 도로 내려놓았다.
“왜요.”
“별로야.”
“왜?”
“딱딱한 거 씹으면 덧니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싫어.”
“음······”
정국은 손에 들고 있던 육포를 먹지도 않고 공중에 띄워놓은 채로 멈춰 있었다. 말끝을 늘이기만 하고 새로 시작하지 않았다. 왜 그래. 태형이 묻고 십초 가량이 지나서야 말했다. 아저씨 그런 얘기 처음 들어요. 1년 만에. 덧니 있다는 거, 난 처음 알았는데. 태형은 말을 안했으니까 모르지, 하고 작게 웃었다. 웃었다기 보다는 숨을 빠르고 짧게 내쉬었다. 무슨 반응을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정국은 식탁보의 무늬를 세며 말했다. 못 본 반년 간 정국의 말투는 다소 점잖아져 있었다.
“그럼 왜 먹었어요.”
“그냥, 간만에···”
태형의 입 안에서 비릿함이 감돌았다. 육포 모서리가 여린 살 어딘가를 찌른 것 같았다. 아니면 육포의 비린내이던가. 하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을 잃어버려서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피 나는 거 같아. 거름망 없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정국은 고개를 태형에게로 향했다. 태형은 정국의 동공에 꽤 감동했다. 언제 봐도 시커멓고 반짝이는 눈이었다. 일어서요. 왜? 어리둥절한 태형은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정국은 태형이 서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봐 봐요.”
“보면 뭘 알아?”
“모르지.”
정국은 태형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태형의 솜털이 삐쭉 곤두섰다. 반사적으로 정국의 손길이 닿는 곳 반대편으로 몸을 움츠렸다. 정국은 태형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눈 안의 수정체, 그 뒤를 탐구하는 듯이. 태형은 정국이 제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국이 하도 눈을 맞춰오는 탓에, 입이 벌어졌을 때에는 놀라는 기색도 내지 못했다. 움직임을 제지당한 눈썹만 이따금 꿈틀, 꿈틀, 하고 떨었다.
“·········”
“·········“
”눈은 왜···“
모르는 새에 눈을 질끈 감은 탓이었다. 숨이 교차하는 거리는 말을 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게 했다. 정국이 치아의 끝부분을 엄지로 누르는 압력이 저항 없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태형은 발 끝을 꿈질거렸다. 손 안엔 땀이 차기 시작했다. 정국이 숨을 쉴 때마다 태형의 솜털이 고스란히 딸려 움직였다. 태형은 별안간 죽고 싶어졌다. 뭐라 정의내릴 수조차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예의 그 붉은 기류 따위의 것들이 아니었다. 거북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토기가 올라왔다. 죄악감이 온 몸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다 못해 잠이 올 지경이었다. 정국의 아비의 이름이 적힌 명부가 태형의 머릿속을 헤엄쳤다. 슬하에 자식 하나. 슬하에 자식 하나. 열여섯. 채무 이천. 전정국.
“피 안 나는데.”
”·········“
“피 안 나요. 멀쩡해요.”
멈췄어. 정말 방금. 거짓말이 아니라.
태형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개만 힘 없이 끄덕였다. 오해하지 말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 덧붙이려 했으나, 머지않아 금세 우스워질 핑계거리였다. 오해는 무슨 오해? 태형은 자신이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은땀이 날아간 뒷목이 서늘했다. 어색해도 침묵을 택하는 편이 더 나았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
”나 반년 만에 왔어요.“
”·········“
“뭐 할말···없어요?”
“···너가 나 피했잖아.”
정국은 기가 찬다는 듯 입을 열고 무언가 말하려나 싶다가, 속에서 걸린 듯 몸을 움찔하더니 주먹만 쥐고서 돌아섰다. 홀로 남은 태형은 치열을 혀로 쓸었다. 잇몸이 조금 부어있었다. 혀 안쪽을 뭉글게 깨물었다. 살에 제법 아프게 박히는 치아를 찾아냈다. 작은 어금니가 유난히 날이 서 있었다. 조만간에 또 피를 볼 것 같았다.
“아저씨는···”
“·········”
“자각이 없어요?”
방에 들어가기 전 문을 열다 멈춘 정국이 말했다. 태형은 말을 잃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울컥 밀려왔다. 태형이 대답이 없자 정국은 고개를 돌렸다. 누가 보아도 참 앳된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칼이 하얀 피부를 덮고, 그 사이로 안광이 옅게 배어나왔다. 분노가 서려있는 듯, 아닌 듯, 태형은 정국의 눈에 무언가 한 겹이 더 덧대어져있다고 느꼈다. 맑은 듯 하나 투영하기 어려운 눈동자였다.
“내가 왜 널 의식해야 해?”
“·········”
“···대답해. 맨날 묻지만 말고.”
지금도 정국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가 왜 그런 표정을 해,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정국은 어려웠다. 그리고 이것은 태형이 정국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첫 균열이자 동등한 시선에서 주고받는 물음이었다. 정국은 더 이상 무지한 질문자가 아니었다. 태형 또한, 친절한 피질문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네 밥줄이야?”
“·········”
“·········”
“아니에요.”
“·········”
“그런 거···그런 거 아니라고.”
“·········”
“아저씨 없어도 밥은 잘 얻어먹고 다닐 수 있어요.”
“·········”
“잘게요.”
문을 쾅 닫을 것이란 생각에 미리 긴장을 하고 있던 태형의 예상과는 달리, 정국은 문을 부드럽게 닫았다. 달칵, 하는 소리만 들렸다. 다음 날 들어온 미도만 곤혹스러워졌다. 삭막해진 공기가 살에 닿자마자 미도는 팔을 위아래로 슥슥 문질렀다. 왔어?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미도는 아주 작게 뻐끔거리며 물었다. 태형은 눈짓으로 정국의 방을 가리켰다. 부르지 마. 미도는 태형에게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그리고는 정국의 방문을 두 번 노크했다. 야 이미도···! 태형은 벙긋거리며 미도를 불렀다. 미도가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정국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다. 옷 입어. 미도는 짧게 말했다. 왜. 면허 땄거든. 미도가 정국의 눈 앞에다 운전면허증을 딸랑거렸다. 흐린 눈으로 초점을 잡던 정국은 졸린 정신에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마른세수를 하는 척 얼굴을 가렸다. 사진 참 안 받는다고 생각했다.
“·········”
“·········”
“울었니?”
“·········”
미도는 태형의 차를 빌렸다. 절대로 기스 안 내겠다는 말로 태형을 회유하던 미도는 태형이 키를 휙 던지자마자 정국을 끌고 나갔다. 기분 바뀌기 전에 빨리 가야한다고 했다. 드라이브 삼십 분 째에도 정국은 과묵한 상태를 유지했다. 동시에 일어난지 겨우 삼십 분이었다. 눈의 붓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미도의 텐션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미도는 정국이 사람 진 빼는 데에 영특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국은 창을 내렸다.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미도는 피식 웃었다. 정국이 다 갈라진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비가···”
“어어, 소리도 지르셨어.”
“·········”
“말해봐.”
정국은 머쓱해졌다. 목소리가 보릿고개 나무껍질처럼 뻑뻑하게 갈라졌다. 일부러 높여 말한 미도 때문에 더 그랬다. 목을 가다듬었다.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다듬었다.
“나비가 꽃이 아니라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야.”
“응.”
“아니면 벌을 좋아할 수도 있고.”
“·········”
“그럴 수 있잖아.”
“근데 그게 왜, 그래서 너가 나비다?
”아니···“
”아냐?“
”감성이 없어···“
”감성이 밥 맥여주니.“
”죽지 않게는 도움을 줘.“
”·········“
”·········“
”참 사람 무안하게 한다, 가끔 보면.“
”미안.“
”미안하라고 한 소리 아니야.“
미도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노을이 빨갛게 타고 있었다. 미도가 먼저 문을 열고, 정국이 미도를 뒤따라 내렸다. 정국은 노을보다 동트기 전 푸르게 익는 새벽이 좋았다. 미도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담배 한 갑을 꺼냈다. 그리곤 말없이 한 개비를 뽑아 건넸다. 정국은 담배를 잡고 망설였다. 미도는 정국의 손을 벌려 가장 굵은 손금에 담배를 놔주었다. 김태형은 이거 못하게 하잖아. 응. 진짜 노인네 같애. 응. 정국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개비를 끼웠다. 얇았다.
”얇네.“
”어.“
”이건 맛이 좀 나아?“
”너 담배를 맛으로 펴?“
맛으로 피는 거 아니면 뭐하러. 정국이 미도를 멀뚱하게 바라봤다. 미도는 눈 색도 옅었다. 속눈썹도 가늘었다. 미도가 웃으며 말했다. 김태형이 말릴 만하다. 뭐가. 맛으로 핀다며, 담배. 응. 그러니까. 응. 정국은 미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미도도 딱히 정제되지 않은 말을 뱉는 듯 했다. 생각을 깊게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얇으면 좋아?“
”그닥.“
”그럼 왜 펴.“
”사회적 멋.“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가오야. 미도가 덧붙였다. 정국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미도는 담배를 빨지 않고 연기만 나게 두었다. 정국은 불도 붙이지 않고 미도의 담배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얇은 담배는 미도의 손에서 겉도는 것 없이 잘 녹아들었다. 마치 미도를 위해 맞춤제작된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싸가지가 없어. 주관적으로 보면 더.“
”나?“
”자기객관화 잘 되는 점은 좋아.“
”응.“
”정국아. 내가 싹바가지 없는 너를 왜 싫어하지 않는 줄 알아?“
”아니.“
”내가 그랬어.“
”·········“
”내가, 너랑 똑같이.“
”·········“
미도는 건조한 눈으로 정국을 담았다. 미도의 눈에서 노을이 타고 있었다. 장초에서 이제 반 남은 담배 끝을 정국의 것과 맞대었다. 불씨가 옮겨 붙었다. 그리곤 말했다. 나 부모 없어.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저씨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귀에 은색 십자가 귀찌를 하고있던 폰팔이가 떠올랐다.
이름도 얼굴도 몰라. 원래 이름은 알았는데, 지금은 생각도 안 나. 몸이 으슬으슬하니 추운데 열이 나더라. 죽기 딱 좋겠다 싶었지. 그러다 김태형이 날 주웠어. 분명 깡패새끼들이랑 그 자리에 같이 서있었는데, 뭔 가식인가 싶더라. 웃기지도 않아···. 눈 뜨니까 병원이었어. 독촉쟁이들도 깡패도 없는 하얀 병원. 나더러 어디로 갈 거녜. 그 집이 딱 떠올랐는데, 거기엔 죽어도 가기 싫었어. 시체 냄새 같은 게 나서. 정국은 그 대목에서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참으려고 참았지만 관자놀이에 측은함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냥 같이 살았어. 그게 나 열여섯일 때야. 이게 다야.
정국은 머리가 차게 식었다. 열여섯, 이라고 다시 되물었다. 미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봄에. 김태형 아니었으면 벚꽃으로 무덤 만드는 호화스러운 짓도 할 수 있었겠지.
”사람이 참 이상하지, 무덤덤한데.“
”·········“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막 겉잡을 수도 없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미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여기 사람들은 다 질문에 답을 안 하는 거야. 정국은 이를 빠득 갈았다. 다짜고짜 이를 가는 정국에 미도는 일말의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답은 네가 찾는 거야, 원래. 라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말해줘 봤자 직접 겪기 전엔 다 개소리야.“
”·········“
”같잖은 큐피드 같은 거 될 생각 없어. 꼴사나워.“
”·········“
”손 데인다.“
”·········“
“손.”
아 뜨거···. 정국은 손을 몸에서 멀리 떨어트린 채 탈탈 털었다. 그러게 말 했지. 미도는 눈살을 작게 찌푸렸다. 내 말이 도화선이 되면 안 돼. 방아쇠도 마찬가지고. 미도는 꾹꾹 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내 탓을 하지 마. 미도와 정국은 노을이 다 사그라들고서야 차에 올랐다. 담배는 각각 하나밖에 태우지 않았다. 미도는 정국의 소매에 향수 공병을 대고 칙칙 뿌렸다. 납작 방석 냄새가 났다.
“정국아.”
“응.”
“내가 문학명언설교···그런 류를 싫어해.”
“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뭐 어떡해 그럼.”
“·········”
“빛보다 빠르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면 되잖아.”
“·········”
”손에 캐치해야만 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보통 정상범주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연예인들을 감금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잖아. 지구본 만드는 사람들 꿈이 지구 정복하기가 아닌 것처럼. 그런 사람 있으면 뭐··· 있을 수 있지, 근데 현실에 옮기진 않잖아.“
”·········“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의 꼬리 빛 반사를 훑으면서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살아도 되고···아무튼.“
”응.“
”내가 왜 명언들을 싫어하냐면 반박 글에 각주를 이만큼씩 달아야하니까 싫은 거야. 구질구질하게.“
”안 구질구질해. 멋졌어, 방금 그거.“
”그냥 말해주고 싶었어.“
”응.“
”내가 이런 게 필요했으니까.“
”응.“
”김태형이 그랬어.“
”뭘?“
”다섯 가지 이유가 생길 거라고.“
터널을 지나자 미도의 얼굴 위로 삽입등의 빛이 얼룩말처럼 내려앉았다. 차 안이 밝았다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정국은 자는 척 모든 것들을 기억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아무 노래도, 라디오도 나지 않는 차 안과 엷게 드는 녹색 불빛, 그리고 미도의 향수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았다. 미도와의 드라이브 이후 이 주 정도가 지나자 정국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미도와는 가끔 화투를 쳤었다. 미도는 정국에게 사만 원 가량을 따갔다. 그리곤 그대로 과자로 환산해 돌려주었다. 당분간 미도와는 만날 수 없었다. 장학 특례로 해외연수를 다녀온다고 했다. 정국 역시 태형에게 더 이상 면회를 오지 말라고 일렀다. 2년 동안 자신을 찾지 말라는 통보를 한 셈이었다. 태형은 알았다고 했다. 둘은 동시에 집을 나갔다.
칠. 햄버거 무기한 유통기한에 대한 새로운 증빙
정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동안 애인을 열 명을 사귀었다. 남자도 한 명 끼어있었다. 외모에 비하면 열은 그리 유별난 숫자도 아니었다. 열 번의 연애를 했다면 열 번의 소모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보통 이치에 맞지만, 정국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남자였던 두 번째 애인은 김태형과 똑같은 곳에 점이 있었다. 정국은 그 두 번째 애인의 코와 입술에 자주 키스를 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이유로 이별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정국이 사람을 외롭게 한다는 말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 있다고. 정국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친절하게 말해준 것이 여덟 번째 애인이었다. 이름은 혜정이었다.
”넌 사람을 외롭게 해.“
”그거 무슨 뜻이야?“
”키스할 때 눈을 떠.“
혜정의 말도 이게 마지막이었다. 정국은 먹구름을 잔뜩 껴안은 채로 집에 돌아왔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도 친구에게 에어드랍으로 받았었다. 태형은 그대로였다. 정국은 이제 성인이 되었다. 졸업을 2월에 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미도는 공채에 합격했고, 운전면허를 제외한 자격증 8개를 땄다고 했다. 집의 가구배치도 바뀌었다. 정국의 흔적이 옅어져있었다. 정국은 성인이 되자마자 태형과 술을 한 잔 하자고 했다. 태형은 수락했다. 태형은 코트를 입었다. 2년 전 홈쇼핑으로 봤던 그 코트였다.
”2년 동안 많이 생각했어요.“
”응.“
”나 아무래도···“
”하지 마.“
”···아무 말도 안했어요.“
”나한테도 똑같은 2년이야. 개소리 하지 마.“
”···왜 그렇게 모나요? 아직도 그거 때문에 그래요?“
”·········“
”그거 대답하는 거예요, 지금.“
”안 궁금해.“
”사랑해요.“
아마 세상에서 제일 무드 없는 고백이었다. 공원 공터에서 대왕 쇠파이프에 앉아서 오징어다리나 뜯으며 하는 고백이라니. 태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아파왔다. 맥주가 너무 차가웠다. 감흥 또한 없었다.
”싫어.“
”왜요.“
”네 아버지한테 빚을 졌어.“
”그게 이유에요?“
가볍게 넘기려고 한 태형이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살얼음 낀 테라 밖에는 없었다. 정국은 격양되지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삼백안이 되기 힘든 꽉 찬 눈에 흰자가 번뜩였다.
”날 사랑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냐고요.“
”누가 그래.“
”알 필요 없어요.“
”···너 이제 애 아니야. 말 바로 해.“
”바로 하고 있잖아요. 빚은 애비가 아저씨네 한테 졌지. 내가 빚졌어요? 아님, 아저씨가 나한테?“
”·········“
”아니잖아요. 대답 또 못하잖아요. 뭘 빚졌는데요, 죄책감? 담보로 뭘 걸었는데요.“
정국이 한 뼘 다가오자 정국의 앞에 놓여있던 맥주 캔이 모래바닥으로 엎어졌다. 탄산 빠지는 소리가 났다. 태형의 청각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죄책감을 어떻게 빚을 져요. 그건 사유지. 그딴 걸 남한테 왜 떼어 오냐고요. 자기한테 필요한 걸 빚져야지. 아저씬 턱 끝까지 죄책감이 차있기를 바랬어요? 그리고 애비라는 작자는 죄책감이라곤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한테 뭐를 빚져!!“
”·········“
”아저씨 솔직히 말해 봐요.“
”·········“
”깡패 아니지. 조폭도 아니지.“
”나 좋은 사람 아니야.“
정국은 태형을 놔두고 집으로 먼저 들어왔다. 삼십 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들어온 태형은 공터에서 보다 좀 더 취기가 올라 있었다. 정국이 울며 다가왔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다가왔다. 태형은 반 감긴 눈으로 중얼거렸다. 가식적인 새끼··· 정국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정국은 태형에게 호소했다.
”내가 좋아해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요. 그냥 인정만 해주면 안돼요···? 힘든 일이에요 그렇게······?“
”정신차려 임마.“
”나 제정신이에요.“
”너 제정신 아니야. 정국아, 정신 좀 차려 제발··· 너가 날 왜 좋아해.“
정국의 눈물방울이 태형의 부직포 재질 코트에 송글송글 맺혔다. 태형은 맺히는 눈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보이지, 그래, 근데 이게 다 슬픔이 아니라고··· 점점 늘어지는 태형의 몸뚱이를 안고 정국은 서 있었다.
”정국아. 내가 품기에 너는 너무 큰 사람이야.“
”아저씨가 왜 날 품어요. 그냥 서로 안으면 되는 거잖아요.“
”너 생각보다 꽤 괜찮아. 방금 그 말도 그렇고···“
태형은 정국의 뒤편 흐려지는 거실 등을 보며 말했다. 아주 가만히, 고요하게. 부유하는 음절 없이 꾹꾹 눌러 말했다. 길게 말했다. 태형은 정국에게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적절히 끊을 지점을 찾지 못했다.
”방금처럼, 이렇게 너한테 얻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
”·········“
”있잖아 정국아, 지식과 가치관은 일정 공간 안에서만 확장되는 거야. 그리고 사람이 다 관계로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나나 너가 가진 게 다 고갈되고 나면, 이제 너가 더 이상 나에게 계몽시켜줄 게 없게 되는 때가 올 거야. 그때쯤이면 이미 우린 감정적 유대가 강하게 되어있을 건데, 그게 평생 가지 않아. 그리고 사람은 동시에 누군갈 사랑할 수 없어. 그럼 우린 헤어져야 하고, 그 사이에 녹아있던 접착제가 떨어져버리면 뜯어진 살이 너무 아플 거고···피가 너무 많이 날 거고···.“
“어려워요.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정국아, 우린 무적이 아냐. 너도, 나도.”
태형은 그 말을 끝으로 푹 엎어졌다. 어쩌면 제일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걸 알아챈 뇌가 끝까지 버틴 것 같았다. 정국은 태형을 들어 방으로 옮겼다. 그리곤 방에서 교복을 가져왔다. 태형의 몸 위에 교복을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정국은 또 울고 말았다. 성인이 되면 울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태형은 정국을 맨날 울렸다. 교복이 미치도록 잘 어울리는 탓이었다.
팔. 여름에 죽지 않던 매미의 부고
근 2년 간 태형은 술이 늘었다. 뻔하고 흔한 핑계지만,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말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술은, 취한 척 속마음 내보이는 것에 아주 비겁하고 적절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미도야.”
“네.”
크게 나뉘었던 분기점 중 1차. 이 날은 미도였다. 오늘은 제법 진하게 취할 작정인지, 알콜진담의 장소는 포장마차였다. 3월이라 아직 추웠다. 태형은 아직 맨정신이었다.
“그런 거 있잖아. 감정이 이성을 이기는데, '참을성이 없다'라는 말로는 좀 부족한 거.”
“음.”
“그렇다고 사족을 붙이면 붙일수록 겉잡을 수 없이 추해지는 거.”
“음.”
“그치?”
“네, 그런 거 같으세요, 지금.”
졸라 궁상맞고 찌질하고. 미도는 계란찜을 푹 떠먹었다. 태형이 술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미도는 벌써 골이 울려왔다. 지금 많이 먹어둬야 했다. 계산은 태형이 한다는 약속을 받아든 미도는 곱창도 하나 시켰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미도야.”
“네.”
“비싼 아이스크림은 왜 빨리 녹을까.”
“부드러우라고.“
”굳게 다짐한 결심은 왜 빨리 사라질까.“
“편하게 살려고.”
“근데 지금 편하지 않으면,”
“·········”
“그렇게 굳게 다짐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미도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태형의 눈꼬리가 처지자 한숨을 내쉬고는 젓가락으로 파란 탁자를 탁탁 쳤다. 그때는 다 그런 거예요. 사람은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금 보면 이상해도. 과도기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다 괜찮다고··· 욱. 미도는 작게 헛구역질을 했다.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태형은 점점 취해가고 있었다. 원래 자기 얘길 잘 안했다.
“아저씨 그거 잘 하잖아요. 성의 있게 대충 하는 거.”
“그래. 그랬지···”
“·········”
“근데··· 성의가 있음 안 되는 거더라·······”
태형은 양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래도 머리칼을 비죽비죽 삐져나오게 할 힘은 없었는지, 머리만 싸맨 채 멈춰 있다가 탁자 위로 쾅 엎어졌다. 젓가락 위에 바닥 한 군데가 들려있던 잔이 쓰러졌다. 쏟아진 술이 태형의 왼쪽 볼이 있는 곳으로 흘러갔다. 미도는 원래 있던 시야에서 밑으로 가라앉은 태형을 내려다보며 잔을 쭈욱 들이켰다. 하··· 미도는 또 한숨을 쉬었다. 예전이었다면 욕을 했을 것이다. 개새끼, 뭔새끼,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얘기를 듣는 지 아냐고. 그러나 미도는 참았다. 술 한 잔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담배 한 개비를 더 맛있게 피기 위해. 말로 뱉는 것 보다는 토로 보내고 연기로 날리는 것이 더 나았다. 무엇보다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미도는 잠시 산책을 해야겠다며 태형을 대리에 태워 보내버렸다. 찬바람에도 머리는 식지 않았다. 운동을 다녀온 정국이 1층 로비 앞에 포대자루처럼 널려있는 태형을 발견했다. 이 꼴을 미도가 봤다면 분명 ‘노인네가 입 돌아가게···’라고 했을 것이다. 정국이 태형의 몸을 들었다. 팔 아래에 팔을 넣고 일으켰다. 꽤 무거웠다. 태형은 정국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정국아 너는 몰라.”
”뭐가요.“
“내가 너한테 왜 다정할 수 없는지.”
”왜 그러는데요.“
“몰라. 알려고도 하지 마.”
“·········”
“내가 요즘 널 보고 있으면···속이 막 쓰려.”
“기억도 못할 거면 그냥 조용히 하고 자요.”
“나 울고 싶다고, 칠칠맞게 주저앉아서. 하루 종일 울고 싶은데···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아. 울지도 못해.”
“·········”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거야. 헷갈리는 것도 있고···그런데 이건, 헷갈려도 안 되는 거고 당연히 안 되는 거야. 모험조차 할 수 없는 거야.”
정국은 태형을 현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찬바람을 맞으며 오래 서있었다. 귀를 톡 치면 댕강 떨어져 나갈 정도까지 서있었다. 다정할 수 없다. 그 결과가 고작 이거. 정국은 문득 태형의 다정의 마지노선이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선을 넘을 용기는 없었다. 그 금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지고 싶었다.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정국은 태형을 화나게 만들 수 없었다. 태형은 선이 없었다. 그 어떠한 선도. 그저 한 주제에 관해서만 벽을 치고 있던 것이었다.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도망쳐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허비했다. 허비라기 보단 시간이 증발했다. 손 쓸 새도 없이 빠르게.
2차. 이날은 정국이었다. 시기는 8월이었다. 매미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주방에선 얼음들이 잔에 구르는 소리가 났다. 보드카 향이 주방 공기를 연하게 물들였다. 태형은 말없이 잔을 건넸다. 정국은 잔을 내려놓고 아저씬 날 버릴 거예요, 라고 물었다. 태형은 응, 이라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뭔데 나를 버려요.”
정국은 이제 다짜고짜 달려들지 않았다. 한 마디를 하고 유리잔을 기울였다. 입술만 축이는 정도였다. 난 널 키운 적이 없어. 태형은 낮게 말했다. 너가 자란 거지. 사실이었으나 정국에게는 그저 때깔만 고운 아름다운 비수였다. 서러움에 피를 울컥울컥 토해낼 것 같았다.
“막말로, 길고양이를 주워왔어도 길렀다 놔주면은 그건 파양이에요 파양. 아님 유기.”
“너 고양이 아니잖아.”
“아저씬 진짜 범법자가 되는 거예요, 그럼.”
“법 위에 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러니까 더더욱.”
태형은 크게 한 모금을 넘겼다. 피곤해질 것 같았다. 스스로 엔진을 꺼야했다. 말은 소리를 가져서,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법은···누굴 지키거나 벌하는 기구가 아니야. 내가 법 아래에 있어야, 내리는 비 피하러 잠깐 들어가는 그런 거야. 쏟아지는 걸 잠깐 피하고 막아주는 거라고. 난 법 위에 있어. 넌 내 밑에 있고.”
“있는 척 하지 마요. 깡패도 아니면서.”
“머리 위에 오르려고 하지 마. 아무리 내가 등신 같고 푼수 같아도, 십몇 년 손가락만 빨면서 논 건 아니니까.”
“대충 한다면서요.”
“·········”
“그럼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데요?”
태형은 정국의 양 어깨에 두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적당한 압을 주었다. 입을 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전정국. 냉정하게 생각해. 정국은 있지도 않던 취기가 깨는 기분이었다. 태형이 정국의 이름을 부를 때 성을 붙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건 너가 지금, 사랑이 너무 필요해서.“
”·········“
”공급책이 급해서 나한테 매달리는 거지.“
”·········“
”아무 단풍나무나 쥐어짜봐. 시럽이 나오나. 마른 가지에 불 붙이지 마. 다 타니까. 헛된 짓이야. 내 나이에 너랑 놀면 지옥 간다. 놀이도 안 돼. 놀이 비슷한 것도 다 안돼. 친구도 안 돼. 이걸 내가 내 입으로···“
”꼭···그런 식으로 말해야 해요?“
”그러니까 왜 그래.“
“아저씨 나쁜 사람도 아닌데 왜요.”
“그게 나쁜 거야. 나이가.”
“천국은.”
“천국도 못 가. 거짓말을 많이 해서.”
“그래요 그럼.”
아저씨, 그럼 나, 독립할게요. 어디로. 어디로든 가겠지 뭐. 그래. 애인도 만들 거예요. 그래. 대화가 짧았다. 말의 높낮이를 잴 수 없을 절도로 짧았다. 콩 던지기 하듯 툭툭. 결혼도 염두에 둘 거예요. 그래. 대화 간 공백의 길이 또한 짧았다. 정국은 말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는 태형에 울컥했다.
“······정말.”
“뭘.”
“빈 말 하나도 없어요.”
“예전부터 그랬잖아.”
“언제부터 봤다고···콩팥 떼어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괜찮아.”
“·········”
“사랑 말고 다른 게 필요하면,”
“·········”
“그땐 옆에서 울어도 돼.”
정국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랫입술에 돋아있던 물집 같은 것이 터졌다. 상처를 계속해서 치아 끝으로 눌렀다. 가장 효과적인 지혈 방법은 무식한 압박이었다. 하필 그 자리였다. 태형이 정국에게 밴드를 붙여준 자리. 정국은 잠시 향수에 젖었다. 문득 습기가 눈가를 적셔왔다. 집이 어두워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만 일어나려 다리를 접은 정국은 몸 반을 일으켰다가 다시 소리 없이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태형은 눈을 정국에게로 향했다.
“불안도 자기 자신이에요.”
“·········”
“그림자를 떼어버리면,”
“·········”
“우린 빛이 없는 곳으로 가야하니까.”
몇 달 밖을 나돌며 일을 나가나 싶던 정국은 정말 독립했다. 미도와는 연락을 하는 듯 했으나 태형에게는 문자 한 통도 하지 않았다. 미도는 태형에게 정국이 애인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축하한다고 전해줘. 싫어요. 미도는 정국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이럴 때가 정말 술이 필요했다. 삼자대면을 해서 개판으로 만들어야 할 때.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고 터져야 할 때. 말이 행동을 이기지 못할 때 같은 지금처럼. 미도는 휴가를 잡았다. 아주아주 긴 휴가였다. 사실은 이민에 가까웠다. 비자를 발급받는 절차는 수고스러움이 많았다. 발품을 팔며 열심히 돌아다닌 미도는 집에만 오면 뻗었다. 태형은 항상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조용한 집이 싫어서 클래식을 트는 습관이 생겼다. 쳇 베이커의 노래가 좋았다. 머리의 썩은 부분들이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그 이상한 기분을 즐겨야 했다. 트랙리스트 노래들의 선율을 다 외울 때 즈음, 정국이 돌아왔다. 왔어. 네. 그게 인사의 끝이었다. 태형은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국의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 닫으며 괜히 방을 정리했다. 모든 게 다 부산스러워 보였다. 차마 정국의 이불은 올려주지 못했다.
구. 원래 구원은 셀프
“뭐 하고 싶어. 아주 나중에. 늙으면.”
“결혼.“
”좋을까?“
“뭐가.”
”그럼 나중에 네 자식이 누굴 닮았으면 좋겠어?“
“그런 걸 왜 물어.”
”아직도 김태형 좋아해?“
사람 두 명을 들어갈 법한 캐리어에 짐을 정리하던 미도가 움직임을 멈췄다. 좋아하냐고. 정국은 대답이 없던 미도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뭐 어쩔 건데. 정국은 다른 곳을 보고 말했다. 어차피 김태형이 너랑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난 어차피 못하지만 너는··· 미도의 검은자가 연한 홍채를 다 잡아먹었다. 동공이 팽창된 채로 다가온 미도는 정국의 멱을 잡았다.
“고추 달린 게 권력이지 그치.”
“놓고 말해.”
“남의 마음 그딴 식으로 폄하하지 마.”
“·········”
“너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나라고 생각 안 해봤을 거 같애? 호감의 끝이 다 결혼이야? 모르면 닥쳐, 여자한테 결혼이 뭔 줄 알고.”
“·········”
“한 번만 더 그런 소리해봐. 그땐 김태형이고 뭐고 다 죽이고 홍콩으로 뜰 거니까.”
“·········”
“난 필요에 의한 사랑을 하는 거야, 안 하면 죽을 것 같으니까, 머리가 그걸 시키니까!!! ·········그게 뭐가 나빠···?”
미도의 눈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확장되었던 동공이 점점 작아졌다. 다시 드러난 미도의 연한 눈이 정국을 울렁이게 했다. 울렁, 하고 속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정국은 미도에게 도게자라도 하고 싶어졌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무신경하다고 치부하기엔 도를 넘은 것 같았다. 미안, 미안, 미도야, 속에선 수백 번이 맴도는데,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니가 콧방귀 뀌는 그 연민, 알량한 동정거리, 뻔한 헌신들, 책임감, 의무감, 그게 내가 필요한 거라고.”
”·········“
”남 산소통 훔쳐 달아나니까 어때, 속이 좀 후련하니?“
”·········“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종류를 못 찾는 것들도 있고, 딱히 분류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고,“
”·········“
”확신은 불안에서 오는 거야, 다.“
똑바로 생각해 씨발새끼야, 너가 남자라서 안 되는 것 같아?
미도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실제로도 미도는 그렇게 말했다. 분노를 다 담아내지 못한 성대가 도를 지나친 내압에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미안해.“
”·········“
“미안해, 미도야.”
”·········“
“미안.”
”너 가끔 보면···“
“·········”
”애가,··· 진짜 약았어······.“
“·········”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사과 하나면 다 되니? 누구는 세상이 무너져가는데···그럼 다들 왜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 미도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머지않아 미도의 얼굴에 소나기가 내렸다. 정국은 모르는 사람의 사과로도 괜찮아지던 자신이 떠올랐다. 미도는 몇 년간 살을 부대끼던 정국의 사과에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준비도 없이 아물리지도 않은 치부를 찔린 탓이었다. 안지 말라고 중얼거리던 미도는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오래 울었으나 흘린 눈물이 많지 않았다. 울다 지쳐 잠드는 건 어린애들 얘긴 줄로만 알았다. 미도의 말이 정국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다음날 아침 미도는 일어나지 못했다. 몸살을 앓았다. 정국이 속을 벅벅 긁은 탓이었다. 결국 미도의 출국 일자가 미뤄졌다. 가장 빠른 티켓은 이틀 후였으나 정국은 삼일 후의 티켓을 예매했다. 미도가 회복하자 이번엔 정국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꼬박 이틀을 미도를 간호했다. 후회를 파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미도가 정국에게 손찌검 하나 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미도가 떠나는 당일, 정국은 라운지까지 나가 미도를 배웅했다. 태형은 나가지 못했다. 이번은 꽤 긴 여행이 될 거 같다고 미도가 당부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잘 있어요.’
‘보고 싶을 거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진심이야.’
‘그니까 짜증난다고요. 그냥 입 다물란 얘기에요.’
‘다녀 와.’
‘네.’
이것이 태형과 미도의 마지막 대화였다. 미도가 다시 태형을 찾는 일은 없었다. 간간히 이메일을 주고받았으나 얼굴을 보는 일은 없었다. 미도는 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불행을 바란 건 아니었으나 태형은 발언권이 없었다. 미도의 독립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장애물을 자처할 생각은 없었다.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린 정국은 공항의 노란 유도블럭을 보며 걸었다. 그래서 미도와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었다. 미도는 그럴 때 마다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럼 정국이 바른 길로 돌아왔다. 단지 이틀 밤을 새서가 아니었다. 이런 저런 아다리가 맞을 뿐이었다. 그저 기폭제가 된 것이었다. 수속을 다 마치고, 햄버거도 먹었다.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이륙하는 비행기들을 구경했다.
”뉴욕은 어때, 좋았어?“
”괜찮더라. 일하러 간 거였으니까 뭐, 이제 오늘부터가 중요하지. 쉬러가는 거니까.“
”미도야.“
”응.“
”나 결혼해.“
정국은 가뿐하게 흘려보내듯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구멍 난 풍선처럼 몸이 말려들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내는 것의 차이는 아주 컸다. 정국은 공항 의자에서 주먹을 말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울었다. 핏발이 붉게 선 손등 위로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그런데도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미안해. 미안해. 공항은 미도의 비행기 탑승을 알렸다. 둘이 앉아있던 5번 게이트였다. 미도는 캐리어를 뒤져 휴지 한 팩을 정국에게 건넸다. 나 너 용서 안 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미도는 마지막 승객으로 탑승했다. 미도의 마지막 호의였다. 정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류에서 온 안쓰러움이었다. 미도의 객석은 창가 쪽 자리였다. 예보에 없던 비가 내렸다. 기체가 구름 위로 올라갔다. 빅 시야에서 사라지자 미도는 시트를 넘기고 잠에 들었다. 기내에서 배부하는 이어폰은 음질이 썩 좋지 않았다.
정국의 신부는 2월의 신부였다. 8번째 애인이었다. 미도의 출국을 기점으로 정국은 짐도 챙기지 않고 맨 몸으로 나갔다. 사랑까진 몰라도 혜정은 정국을 많이 좋아했다. 정국도 혜정이 제일 좋았다. 혜정이 했던 말을 자주 곱씹으니 자연히 혜정이 정국의 무의식에 머무는 빈도가 많아졌다. 그 후론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조금 일렀지만, 지난 300일 연애의 기지를 발휘했다. 결혼은 쉬웠다. 다만 정국은 억눌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늦게. 그러다 겨울이 오고야 말았다. 겨울이 오고도 한참, 어느새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얀 눈 밑으로 연둣빛 아기 봉우리들이 트고 있었다.
십. 우린 단지 죽지 않으려고
두 달간 연락이 두절되었던 정국은 메시지 대신 편지로 안부를 전해왔다. 하얀색 청첩장이었다. 우편함에서 흰 종이를 꺼내든 태형은,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유리 밖의 색이 바뀔 때 까지 계속해서 서 있었다. 다리 근육에 과부하가 와 몸이 기우뚱거리다 넘어져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가만히 그 자세로 있었다. 울지 않았다. 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고작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 1분짜리 전화를 만 팔십 번 하고, 20초 짜리 문자를 삼만 이백사십 번 할 시간. 고작. 만 번들의 시간.
태형은 아주 평범한 일주일을 보냈다. 미도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동사무소에 다녀오고, 은행을 다녀오고, 로또 한 번을 하고, 바다를 보러 다녀오고, 라면을 기부하고, 새벽에 홀로 나가 눈도 맞았다. 공터도 다녀와 모든 바닥에 발도장을 찍었다. 적혀있던 예식장을 찾았다. 운전은 하지 않고 대리를 불렀다. 기사가 물었다. 누가 결혼하시냐고. 태형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백미러로 태형의 얼굴을 잠깐 비춰본 기사는 장례식이냐 되물었다. 경조삽니다. 태형은 짤막하게 답했다. 기사는 지직거리던 라디오를 제 주파수에 맞추고 볼륨을 높였다. 태형은 머리통을 창에 기댔다. 몸이 흔들렸다.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머리가 쿵, 쿵, 부딪혔다.
예식장에 들어섰다. 휘황찬란한 디자인 사이에 번듯한 정국의 이름이 낯설었다. 태형은 신랑 대기실이라는 패가 붙은 공간 앞에 머물렀다. 어쩌다 나오면 인사만 건네려고 했더니 도통 나오질 않았다.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신랑 신부 입장을 하기 전까지는. 문을 밀었다. 턱시도를 입은 정국이 높은 의자에 서다시피 엉덩이만 걸치고 있었다. 태형은 정국이 정장을 입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눈앞의 것들을 적응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신랑 대기실에도 식장처럼 짧게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정국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태형이 한 발을 내딛었다. 또 한 발. 또 한 발. 태형의 걸음이 끊키지 않고 세 번 이상 이어지자 정국은 고개를 들었다. 무표정이었다. 고개를 드니 얼굴이 말끔해져있었다. 원래도 깔끔한 인상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화장했어?“
”·········“
정국은 지금 태형의 말에 대답을 하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네, 아니요, 간만에 보는데 할 말이 그거에요? 정장 입은 거 몇 년 만에 보네요. 이 네 가지 선택지 중 세 번째는 이미 데인 전적이 있어 넘겼고, 마지막은 예전 생각이 날 것 같아 넘겼고, 앞의 두 개는 너무 길어서 넘겼다. 다 넘기다 보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네, 라는 짧은 음절을 만드는 데에도 단계가 있었다. 머리로 결심을 하고 목에 힘을 주고 입을 여는 과정들 사이에 반드시 울음이 침투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도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마구 반항하고 싶었다. 정국은 목을 꼿꼿이 세웠다.
”대답 좀 해.“
”·········“
”오랜만인데.“
”응.“
소매를 만지작거리던 태형은 머리 끝 매무새를 한 번 더 다듬고 정국에게 다가섰다. 이제 두 걸음이 남았다. 그때 정국의 삐져나온 잔머리가 보였다. 태형은 손을 뻗을까 망설였다. 고민 끝에 정국에게 손을 뻗었다. 마음 같아선 잔머리가 스타일링에 녹아들도록 여러 번 굵은 흐름을 만져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장 터치가 적은 방법을 택했다. 머리를 뽑자고. 그러기 위해선 반 걸음 더 다가서야 했다. 태형은 정국의 머리맡에서 손을 움직였다.
”왜 이렇게 죽을 상이야.“
”·········“
정국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태형은 거슬리던 정국의 잔머리를 뽑았다. 탈탈 털었다. 작게 웃음이 났다. 정국은 따끔했던 부분을 되짚었다. 손가락 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예전 생각이 났다. 울음을 참는 건 실패한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태형과 눈이 맞았다.
”신부될 사람은.“
”사랑해요.”
“그럼 된 거잖아.”
사랑이 어려워요. 그래서 밀어두고, 정국은 의자에서 몸을 떼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태형은 그때처럼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육포인지 피 인지 모를 맛이 또 났다.
”아저씨.”
“·········“
”좋아해요, 내가.”
“······하지 마.“
”못 참았어요.”
“하지 마···”
“아예 무덤까지 가던가 했어야 하는데···죄송해요, 나 이거 지금 말 못하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평생 후회할 거 같아서······“
정국이 안하던 죄송하다는 말을 썼다. 위화감이라는 좀벌레가 고막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태형은 표정을 얼렸다. 우뚝 굳어서는 눈가만 살아있었다. 안타까움을 띄는 듯 했으나 표정이 종잡을 수 없이 가라앉았다. 몸을 움직이려는 시도는 태형을 고장난 것 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태형은 아주 천천히 정국에게 다가왔다. 손바닥에 정국의 뺨을 가득 담을 때까지도 한치도 빨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가 좁혀질수록 더 느려졌다.
“넌 왜 자꾸···”
“·········”
“왜 계속 나를 이렇게 멋없는 어른으로 만들어, 왜···”
미지근한 온도가 닿았다. 정국이 놀랄 새도 없었다. 태형은 울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올라간 손은 허리도, 목도, 그 어디도 짚지 못하고 태형의 후배에서 약 오 센티 붕 떠있었다. 태형의 눈물이 정국의 피부에도 닿았다. 아주 뜨거웠다. 미도와 함께 보았던 노을처럼.
“마지막일 것 같아.”
“·········”
“평생 안고 갈 기억이니까.”
”·········“
”이 정도는······“
태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정국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온 몸이 울컥 울컥 울었다. 울대가 불규칙하게 사무쳤다. 차마 괜찮을 거란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엄연히 그릇된 행동이었다. 합리화를 해선 안 된다는 이성이 감정을 간신히 붙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정국의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인 사안이었다. 무너져 버릴 지도 몰랐다. 미지근한 온도끼리의 충돌인데도, 마치 입술에 인두를 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주일, 아니 두 달, 어쩌면 그 이상의, 평범하려고 애썼던 태형의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물거품처럼 터졌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면, 한 번 더 안아줄 걸 그랬을까. 말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정국을 흔들어선 안됐다. 지난 모든 것들이 안쓰러워졌다.
”아저씨, 나 잡아요, 제발···“
”·········“
”위자료는 내가 다 물을게요, 아직 혼인신고도 안했으니까, 그러니까···“
신랑 대기실 앞이 서서히 소란스러워졌다. 태형은 뒤춤에서 무언갈 꺼냈다. 부토니에였다. 꽃잎들이 찌글찌글했다. 정국의 가슴에 천천히 꽃을 꽂았다.
”정국아.“
”·········“
”생일, 축하해···“
정국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몰려들어왔다. 다들 잘생겼다 훤칠하다며 한 마디씩을 던졌다. 태형은 그 뒤로 인파를 빠져나갔다. 태형의 뒷모습을 따라 허공에 손을 휘젓던 정국은 인파에 밀렸다. 그렇게 결혼식은 끝났다. 태형이 정국의 결혼식을 망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키스가. 입술이 닿은 것이 잘못이었다. 맹세서약도, 키스도, 폐백도 뭣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혜정과 키스를 하기 전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는 것이었다. 정국의 생일까지는 아직 일곱 달이나 남아있었다. 정국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이 마음을 정말 독하게 먹었구나. 반년도 더 남은 생일을 미리 축하해주는 악바리로 왔구나, 하고. 자신이 2월에 태어나지 않은 사실을 원망했다. 이번 해에는 태형의 생일축하 헌사가 없다. 태형의 그 흔하고 따분한 명언설교도, 미도의 담배도 뭣도 없다. 정국은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각했다.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과도기일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몇 있다. 첫째는 사랑, 둘째는 고백, 셋째는 결혼이었다. 정국은 현재 최악이었다. 신부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두 달 뒤에 떠난 신혼여행은 뉴욕이었다. 정국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기억이 없었다. 기내식을 받은 혜정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운을 떼더니, 누군가 축의금으로 이백 만원을 냈다고 했다. 봉투에 이름도 뭐도 없었다고. 모조리 신권이라고 했다. 일련번호가 순서대로인건 처음 봤다고 혜정이 방긋 웃었다. 정국은 애써 따라 웃었다. 기내식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흥미 없는 고전영화도 보았다. 비행기에선 계속 토를 했다. 흔들리는 기체 안 화장실에서 몇 번이고 울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다리를 뻗어 문을 걷어찼다. 그마저도 힘이 없었다. 신발만 가까스로 문에 닿을 뿐이었다.
호텔 라운지에 기운 없는 몸으로 들어섰다. 혜정은 목욕을 했다. 정국은 긴장했으나 혜정은 아직 아니라고 정국을 안심시켰다. 우리 아직 젊으니까 조바심 내지 말자고.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정이 고마웠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구역질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협탁 위 수화기가 울렸다. 그리고 끊어졌다. 그리고 또 울렸다. 또 끊어졌다. 다시 또 울렸다. 정국은 수화기를 들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국은 체증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게 차올라갔다.
”호텔은 좋아?“
”네.“
”얼마나?“
”비교대상이 없어요.“
정국은 태형의 말을 들으며, 중간 중간 비어 있는 문장 사이 공백에 ‘대답을 끼워 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담담하게 말하는 태형의 말 사이엔 빈 공간이 꽤 길었다. 말을 다듬는 데에 시간이 꽤나 필요한 것 같았다. 잘 듣고 있다는 표시를 내 주지 않으면 태형이 전화를 끊어버릴 것 같았다. 서울에서 뉴욕까지의 전파가 정국의 숨통이었다. 혈관이고 산소였다.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아요?“
”아무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
”·········“
”척이라도 해보는 거야, 그냥.“
”아저씨.“
”응.“
”내가 지금 보고 싶다면요.“
아, 안돼. 태형은 전화기를 든 손을 멀리 뻗었다. 한계 이상으로 울음이 차오르고 있었다. 꼼짝없이 울어버릴 것 같았다. 정국은 독촉 없이 가만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무음이 전해져오는 시간동안 오로지 대답을 기다리진 못하고, 가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바다.“
”응.“
”바다를 건너야 하겠지.“
”그러면.“
”응.“
”축의금은···왜 이렇게 많이, 보냈어요······“
축의금이 문제니. 태형은 웃음이 났다. 고작 그 이백이 너한텐 그렇게. 태형은 전화기를 양 손으로 감쌌다. 마치 그것이 정국이라도 되는 듯이.
”정국아.“
”·········“
”첫사랑 잊는데 이백이면 적자야.“
태형은 그렇게 말했다. 정국에겐 이 문장이 이상한 말로 남았다. 단숨에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번 되뇌어야만 하는 말이었다. 매정하게도 들렸다.
“···뭐가 적자에요?”
“너가.”
말에 물기가 묻어나다 못해 수화기 선에서 물이 떨어지는 듯 했다. 정국은 그런 생각에 꼬불꼬불 늘어진 수화선 밑 부분을 발로 문대어보았다. 먼지 밖에는 나지 않았다. 나름 고심한 액수였다. 정국의 빚, 그 십분의 일이 되는 지점의 돈.
“하나 더 물을게요.”
”응.“
“왜 생일 축하한다고 했어요.”
”내가?
“·········”
“···내가?”
“꽃 꽂아주면서 그랬잖아요, 생일 축하한다고······.”
기억에 없는 말이었다. 태형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내가, 진짜, 미쳤지··· 비참함에 눈물이 함박눈 내리듯 떨어졌다. 음절 한마디에 울음과 헛웃음이 마구 섞여들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분명 결혼 축하한다고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랬었다. 빈말이든 진심이든. 이도저도 못했다. 태형은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꼴에 멀쩡한 척 하려고 한 결과가 고작 이거라서.
“왜 그랬어요?”
“·········”
“생일 미리 축하한 거예요?”
“응.”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뻔하지 뭐.”
태형은 애써 웃었다. 삼킨 말이 너무나도 썼다. 너무나도 써 속을 다 도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정국을 울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살고자,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귀든, 입이든. 태형은 목을 가다듬었다. 정국 역시도 마지막을 직감했다. 몸을 바로 세웠다. 수화기가 정말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잡았다. 태형은 보드카를 마시던 정국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다 큰 줄 알았다. 태형이 정국의 성장 끝을 지레짐작도 하지 못한 것처럼, 결혼 또한 그랬다. 둥지 떠나서 고생 안하는 새는 보지 못했는데, 남은 둥지 또한 가벼운 비바람에도 날아가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었다.
“정국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꼭.”
“어떤 거요.”
태형은 진심을 담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천천히 데워냈다. 그리고 숨에 온기가 서릴 때 쯤 입을 열었다.
“한 번도 너가 쉬운 적이 없었어.”
“·········”
“한 번도.”
정국은 무너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태형에 나름 준비를 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지 않겠다고. 그러나 태형의 말을 듣자마자, 뇌에 그 말이 닿자마자, 정국의 몸은 산소를 필요로 했다. 정국의 수화기 너머로 바람소리가 들렸다. 태형은 발 끝을 있는 힘껏 오므렸다. 발가락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버석버석한 소리가 이어지다 전화가 끊겼다. 누가 먼저 끊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한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것이었다. 정국의 눈이 침체되어갔다. 버젓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도 안구 뒤쪽이 자꾸만 검게 스몄다. 정국의 시야가 뭉뚱그려졌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악을 질렀다.
같이 우주를 포류 하던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태형이 산소통을 똑 떼고 멀어져 버렸다. 천문학적인 자살. 우린 인간이 잴 수 있는 거리만큼 떨어져있다. 그러나 그 수의 몇 십 제곱으로 멀어진 것이다. 왜 정국은 놓았던 수화기를 다시 들지 못하는가. 몸이 시켜도 머리가 막았다. 이성이 본능을 앞지르는 종막이 열린 것이었다. 인생의 n부. 그럼에도 한참을 달려야 김태형의 시야를 빌릴 수 있는 야속한 파트. 한때는, 잃어버릴 시간보다야 놓친 시간이 더 아까웠었다. 불과 며칠 몇 시 전 까지도.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로 우열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김태형은 무슨 생각으로. 가족이란 단어를.
어쩌면 그 말은 남용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정국이 너무나 얄팍하고 어린 백과사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태형은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삭막하고 거대한 서고에 그것을 끼우고, 먼지를 털고, 장 하나하나에 멱을 묻히고 표지에 아교질을 하고…
물론 바로 앞에 별이 없긴 했지만. 우리가 우주를 여행하고부터 서로의 눈보다 빛나는 별을 찾지 못하긴 했지만. 뉴욕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로 고개를 돌리면 차량의 지시등이 폭발하고 있었다. 인공별의 자멸은, 눈물을 흘릴 때 관측하기가 가장 좋다. 큰 파장으로 몸을 터트리고 있기에. 어디는 적색, 어디는 백색, 어디는 황색. 그러니 김태형도 같은 광경을 보고있겠지, 서울에서. 그러니 우리는 아직 같은 우주에 있는 거겠지. 그런 거겠지. 그럼 매일 울어야 하는 거지. 아저씰 만나려면.
정국이 알거지가 되어도 절대 팔아넘기거나 쓸 수 없는 누군가의 심장이 남았다. 하물며 오천 원짜리 자동복권도 살 수 없는. 정국은, 지금, 아주 강력한 상실감과 함께 태형을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머릿속으론 일백 번도 더 죽였다. 피를 씻어내고 새살 돋은 상처들이 온몸을 다 고루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리곤 키스를 해주고 싶었다.
가능이나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자기만 잊으면 다야. 마지막까지 존나 무책임해. 사랑이 혹이야. 마음이 종양이야. 무슨 수술하듯 똑 떼버리게. 마취도 없이 맨정신으로.
정국은 울지 않으려고 버텼다. 눈을 깜박대는 것을 멈췄다. 의지는 길게 가지 못했다. 그만뒀다. 침대에 엎어져 숨에 몸을 맡겼다. 울음에게 유린당하는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태형과의 약속을 져 버릴 것 같았다. 가진 적도 품은 적도 없는데 잃었다. 죽음의 상실감을 느끼며 숨쉬는 게 사는 게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앞으로 두통이 잦을 것 같았다.
그때, 악수를 하지 말고 길쭉한 손을 깨물고 도망쳤어야 했다. 도망치는 길에 엎어져 깨진 코 때문에 쇼크사 하는 게 가장 아름다웠을 결말이었다. 우린 그게 맞았다. 주제넘게 취해버려서 사리분별도 못하고, 물고 뜯고 할퀴고, 결국은 이렇게 될 거였으면서. 각자 길을 갔을 거면서. 우리가 다를 게 뭐야, 그냥, 길 걷다가 어깨를 살짝 부딪힌 거지. 그리고 몇 발짝 더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본 거지. 타이밍이 다르게.
십일. 넌 나에게 폭팔하고 약 이백의 파편은 낭자했고
택배는 착불이었다. 시킨 것도 없는데 기사가 문을 두드렸다. 태형은 돈을 지불하고 상자를 받았다. 취급주의 품목이었다. 포장을 뜯고서는 비명조차 낼 수 없었다. 취급주의 품목에 양복이 포함될 줄은. 입을 틀어막았다. 기도에서 나오지 못한 숨들이 회오리로 몇 번을 돌았다. 아주 새카만 양복이었다. 유행 타지 않는 스탠다드 스타일이었다. 태형이 꽂아주었던 부토니에와 아주 유사하게 생긴 드라이플라워 뭉치가 같이 들어있었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감히 떨리지도 않았다. 몸이 미동도 없었다. 그저, 속이 미치도록 진동할 뿐이었다. 태형은 구석으로 쏠린 편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벽에 기대었다.
이백 일 만 원짜리 양복이에요
내 사랑은 이백일 만원이에요 만족하는지
나 이제 아저씨 얼굴 볼 자신 없어요
사이즈 잘 맞을지 모르겠네요 벌써 몇 년이 지나서
초봉으로 산 옷이에요
이백만원도 가져가요 넣어뒀어요
결혼 축하할 자격 없으니까
아저씨 짝사랑 감당할 자신도 없으니까
어떻게 마음에 무게를 달 수가 있겠어요
폭팔 같은 거 였어요
대략적인 것만 눈에 보이고
속절없이 죽어나가고
중심이나 원인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 거
근데 큰 불이 필요했잖아요
나도 너무 어렸지만 우린 너무 서툴렀고
서툴렀는데도 또 무모했어요
잘 지내요
행복하게 살게요
전정국
태형은 정국의 편지를 읽으며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켰다. 도무지 앉아 읽을 수가 없없다. 끝내 완전히 일어난 상태로 편지 읽는 것을 마쳤다. 편지가 끝에 다다를수록 호흡이 거세졌다. 자기 좀 행복하게 살게 놔달라는 거야, 아님 행복하게 살 테니까 잘 지내라는 거야. 나이 탓에 눈이 침침한지 글씨를 작게 써서 안 보이는지 모르겠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태형은 겉잡을 수 없이 초라한 기분을 느꼈다.
어떻게 마음에 무게를 달 수가 있겠어요.
태형은 그 구절을 반복하다 끝내 중심을 잃고 무너져버렸다. 정통으로 부딪힌 무릎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바닥만한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피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저 깊이 고여 있던 피. 정국이 각혈을 한 것 같았다. 그 김에 속을 다 뱉어버린 것 같았다. 이 편지는 전정국의 속을 벅벅 긁고 할퀴고 찢고 나온 셈이었다.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말들. 콩닥콩닥한 맥박이 느껴질 것만 같은 말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눈을 꽉 감으니 새카만 배경에 정국이 아른거렸다. 죽을 맛이었다. 하여간 네 마음은 숨기 좋게 생겨서, 사각지대는 없고 그나마 있는 공간은 공기가 없어. 이제 정말 노망난 미친 인간처럼, 울부짖을 일만 남았어. 접착제를 다 떼어버렸구나. 네 살을 다 뜯어가면서. 피를 닦아줘야 하는데, 너무 멀리에 있어. 미도한테 부탁받았는데. 널 잘 책임져야 한다고. 그치만 정국아, 나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잖아. 핑계가 아니었어. 내가 아버지처럼 굴려면 널 자식 대하듯 대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시작은 불완전했고, 전개는 양호했고, 결말은 완벽했다. 삶에도 곡절이 있는 건데, 폭이 너무 넓었고 골이 너무 깊었다. 태형은 그렇게 생각했다. 안전바 없이 롤러코스터를 탔던 거라고. 과연 무엇을 탓해야 할까. 우리에게 없던 안전바.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도는 롤러코스터. 목숨 담보로 무모하게 뛰어든 우리. 단순히 ‘용감했다’라곤 말할 수 없잖아. 우리의 병의 기록은 무용담이 아니잖아. 실패한 사랑이라고 해서 사랑이 아닌 건 아니지만 그게 추억이 될 순 없잖아.
태형은 정국에게 꼴같잖은 예술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괜히 예술병에 도취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추상화로 유명한 피카소는 이미 모든 미술을 다 섭렵해서 그 그림의 가치가 높은 거라고. 발가락으로 붓 잡고 몇 획 휘갈긴다고 그게 작품이 되니, 라고 했었다. 정국은 태형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내 그림을 아저씨가 사면 되잖아요, 라고 했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별 개지랄을 해도, 아저씨가 그걸 봐주면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던 상관없어요. 우리 지금 숨을 쉬는 것도 어쩌면 기적이고 예술이에요. 예술적이잖아요, 흉곽의 오르내림이 그럴 수 있고, 숨소리의 높낮이가 그럴 수도 있고. 뭐 그게 별 거 있어요? 자격이 필요한 거예요? 그냥 세상에 내가 있다고 주장하기 가장 쉬운 수단이지. 포장하기 좋은 방법이고요.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사방에서 빛을 받는 아저씨 얼굴을 삼백 가지 색깔로 그린 것도 아니고, 그냥 아저씨 옆모습 하나 딸랑 그렸어요. 정면은 잘 봐주질 않으니까요. 이걸 보고 뭘 느낀 거면, 아저씨도 체질이에요. 같이 하면 딱 될 것 같은데. 예술. 꼭 아름다워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치만 우리 모난 사람은 아니니까, 최악은 벌써 면한 거잖아요.’
태형은 그 자리에서 잠시 숨을 멈추었었다. 정답을 알았다. 영점짜리 시험지는, 정답을 다 알아야만 나올 수 있는 결과였다. 성적 정정도, 기간 내에 끝내야만 하는 거였다. 텅 빈 교무실 문만 쾅쾅 두드릴 게 아니라.
태형은 포크레인과 무너진 담벼락만 보면 하얗게 식은 정국이 생각났다. 피부가 하얗고, 눈과 머리가 까맣고, 눈빛이 삭막하던 열여섯의 정국이. 담배를 떨어트리며 자신이 만약 죽고 싶다면 어쩔 꺼냐며 반항적인 눈을 치켜뜨던 아이를. 목적은 없지만 존재만은 확실하던 예의 그 분노를.
너는 엿 같은 이야기, 나잇값 못하고 쩔쩔매던 아저씨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걸 말리진 않지만, 부인하지도 않겠지만, 나도 어린 애 데리고 장난질하는 그런 악취미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입 밖으로 내면 세상이 펑, 펑, 터질 것 같아 그랬지. 내 품이 너무 작아서 낙하하는 돌덩이들로부터 너를 지켜주지 못할까 봐. 너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커진 걸 알면서. 너가 내 턱 밑에 있을 때부터 내 눈 바로 앞에 네 입술이 올 때까지 너를 봐왔으면서.
왜,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한다잖아. 그걸 기특히 여겨서라도 사랑을 했었어야 할까. 난 어른이었고 넌 아이였잖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성인과 미성년자. 너가 지금 성인이 되었대도 나는 너를 양육한 거나 다름없잖아. 가르쳐준 건 많이 없는데, 그에 비해 너무 많은 시련을 겪게 한 것 같아. 그런데 정국아,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건 결국 실패했으니까, 널 사랑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을 거니까, 그거는 빼고, 사랑한다고 말을 했으면, 난 그것도 후회했을 것 같다. 어차피 불발될 수류탄이긴 했는데, 그건 언제일지 모르는 거잖아, 터지는 시점이. 안전핀을 뽑았다고 바로 터지지 않아도, 바로 1초 뒤에, 아님 1초의 작고 작은 분절 후에 펑 하고 터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몸에서 멀리 떨어트려놓고 있었어. 어찌됐건 거긴 너의 숲이었는데. 내가 다치지 않는다고 한들 거긴 너의 숲이었는데. 아쉬운데 후회는 못하겠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사랑해. 사랑했다. 그 말을 참느라, 물 대신 피를 더 많이 삼켰어. 속을 다 긁어서. 이걸 가두고 있느라. 너가 내 나이가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한 번 만나자. 밥 말고 술 사줄게. 그땐 형 동생 사이로 만나. 되도 않는 가족 같은 사이 말고. 아저씨 말고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에.
그래, 사랑이 혹도 아니고 어떻게 똑 떼어낼 수가 있겠어. 그것도 마취 없이. 다신 시도도 안 할거야. 무마취 수술도, 누굴 마음에 품는 것도.
태형은 그게 정국으로 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처음은 처음으로 남겨졌으면 했다. 제가 정국에게 기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밖에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시작과 끝. 깔끔한 이름 석 자로. 아무리 늙고 기억이 삭아도 그것만은 잊지 않도록 간결하게 말이다.
여름이 너무 더웠어, 그치. 그때 우린 그게 최선이었던 거야. 매미가 미치도록 울고 공사장 분진가루가 폴폴 날리던 날. 날이 추웠다면 달랐을 거야 그치. 길바닥에서 동사하지 않았으니까 최악은 면한 걸 거야. 담뱃불을 붙여주지 않았던 건, 그런 거야. 뻔한 동정이 아니라, 그런, 행운의 2달라 같은 거. 고리타분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럴만한 사정들이 있었던 거. 마음이 시켰어. 널 오래 볼 거 같았거든. 첫 느낌에. 약속해. 다시 오면, 그때는 떠나가지 않을게. 미래를 약속할게. 그러니까, 연습했던 평행선으로 가는 거야. 눈은 마주치되 몸은 만나지 않는 거야. 서로 같은 병을 짊어지고 사는 거야. 그냥, 옛 기억을 처방전 삼는 거야. 약을 먹으면 치료될 거니까. 언제든 약국을 갈 수 있지만, 가지 않는 거야. 그걸 뭔가로 등가교환 하지 않는 거야. 애들 장난처럼, 병원놀이 하듯이 가볍게 끄적인 처방전만 새기고 사는 거야. 무덤덤하게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정말 마지막까지
영글질 못한다, 열매가.
어쩌겠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게 사랑이게
이유를 댈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야
철 없어도 좋아. 마침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널 사랑했고
머리에 피가 마르면 죽잖아
날 이해하지 마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내 욕 많이 해. 생명선이 짧다더라고
우리는 무적이 아니니까
다만 상처가 조금 크고 넓었던 걸로 하자
괜찮아
양복 잘 입을게
국화꽃 들고 놀러 와
김태형
태형은 볼펜을 쥐는 것에도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만유인력에 저항하며 척추를 펴고 있는 것이 고되었다. 자꾸만 엎어지고 싶어졌다. 세상이 느리게 굴러가다 퍽, 하는 둔탁하고 거친 소리를 내며 너저분하게 멈추곤 했다. 호흡기에 불이 타오르는 듯 했다.
“폭팔하긴 뭘 폭팔해··· 폭발이겠지 등신새끼···가방 끈 짧은 걸 티를 꼭 내. 어디서 뭐가 폭발을 해 더 터질게 뭐가 남았는데 우리 사이에 도화선이 더 어디 있는데······“
간신히 편지를 끝맺은 태형은 정국의 편지를 도로 떠올리곤 미친듯이 머리를 쿵, 쿵 박았다. 글씨로는 담담한 척 했으나, 겨우 손바닥 따위로 장마를 막을 순 없었다. 탁자 유리엔 뿌연 자국이 남았다. 물리적 아픔 따위 별 대수도 아니었다. 유난히 글에 약했던 정국이 독 한 가득 들은 물탱크가 된 기분이었다.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그것을 남김 없이 삼켜버려야 했다. 가슴을 뜯어내어 버리고 싶었다. 귀가를 하고 외출을 할 때 마다 거실 티비 근처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정국과 미도가 드래곤볼을 보다 고개를 틀어 잘 다녀오라고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태형은 혼자가 좋았다. 다만 자발적일 경우에 한한 선호였다. 정국이 답장을 보내올 것만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태형은 주소를 이전하기로 했다. 차마 편지를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사랑해. 이 한 마디면 되었는데, 그것은 금기어였다. 때문에 편지가 자꾸만 길어졌다. 얼마나 많은 말들을 잘라냈는지 셀 수도 없었다. 태형은 그렇게 가슴을 썰어냈다. 깎이는 게 싫다던 사람이.
십이. 신도시엔 전신주가 없다
두 달 후면 여름이 돌아온다. 연잎들은 새파랗게 여물 것이다. 또 낮이 길어지고 매미가 판을 칠 것이다. 수박과 아이스크림 스쿱, 그리고 사이다도 필요할 것이다. 모기향도. 드라이브할 차도.
정국은 한 자 한 자 엄지로 누르며 태형의 글자를 따라 읊었다. 날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 셈이지. 정국은 별안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랑 아닌 사랑도 있어야 하지만,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도 있어야 하지만, 그게 꼭 아저씨일 필요는 없는데. 정국은 문득 궁금해졌다. 태형이 아는지. 짐작이라도 하는지. 이젠 태형이 없어도 태형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뭐가 그렇게 어려웠지. 우린 왜 그 쉬운 말을 하지 못하는 거지. 되새기는 일은 언제부터 쉬워지는 거지. 말 한마디로 체증이 싹 씻겨가는 게 억울한 걸까, 보상심리 같은 그런 건가. 그간의 아픔들이 모조리 승화되어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닐 텐데. 복습 불가의 사안이었다. 첫사랑은 언제 잊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지.
정국은 마침 혼인 신고서를 불태우고 있었다. 요란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번 밖에 들이마시지 않은 장초로 제일 먼저 자신 이름 옆의 새빨간 도장을 지졌다. 저 열여섯일 적에, 자신의 것은 빨간 사인펜으로, 태형의 것은 세 번째 서랍에서 꺼낸 비업무용 인감도장으로 만들었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되지 못하면, 결혼하면 되지. 그럼 가족이 될 수 있잖아. 그랬었다. 더위를 먹었었을까. 여튼 이례적인 폭염이라고 했었다. 일수하러 태형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도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었다. 길고양이 밥 한 번 챙겨주면 그 다음부턴 맡겨둔 것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듯이, 그새 애정에 중독되어서 혼자 있기 싫어 그랬었다. 정국은 아직 눈물을 참지 못한다. 참지 않는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연장선은 전신주를 타고서 난데없는 새벽의 통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도 해바라기를 잘 쳐다보질 못한다. 선글라스도. 검은 슬랙스와 광택 좋은 구두 또한.
팔에 고개를 푹 묻었다. 그리곤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복도식 아파트 바닥에 주저앉은 것은 정국을 더 초라해보이게 만들었다. 집 안에선 취사 중인 밥솥이 내뿜는 증기 소리가 났다. 누군가 정국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정국은 고개를 들었다. 혜정과 미도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혜정의 먹색 긴머리가 자꾸만 연갈색 단발로 보였다. 정국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게 식은 장초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곤 볼품없이 끊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 좀 붙여줄래. 작은 불꽃이 라이터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정국은 여름의 주검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가 멸하고 무언가가 탄생하던 날. 뺨 줄기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나 적나라해서, 볼을 훔칠 수조차 없었다. 주책맞다. 이 한 마디를 나직히 읊었다.
미도가 그랬다. 세상이 무너질 만한 충격은, 자신의 세상과 같은 질량이 충돌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냐는 정국의 물음에 사랑하니까 헤어져야 한다는 대답을 던진 태형의 질량은 같았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정국은 산산이 부서졌다. 정국은 태형을 미워할 수 없었다. 태형이 정국에게 성의 있게 대충 굴 수가 없었던 것처럼.
더 이상 여름을 싫어할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다. 여름이 싫지 않았다. 사랑했던 무언갈 미워하는 것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아마 이게 우리의 마지막 인사가 되겠지요
수많은 편지들을 구겼어요
미도는 뭐하고 지내나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핑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우린 이제 그래야 하겠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양아버지라고 부르기에도 쑥쓰럽네요
호적에도 안 올라가 있으니 그냥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김정국은 정말 별로인 것 같아요
담배는 끊었습니다
오래 살고 싶어서요
다시 생각해도 남자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죄책감 가지지 마요
꽃 냄새는 질렸어요
고돌이나 한 판 땡겨요
이백짜리 판으로
추신,
가끔은 무적이 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