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소설 ━ EVAN
어느 곳을 가든 인기 많은 자와 평범한 자,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기 많은 자에게 수많은 사람이 붙어 있고 인기 많은 자에게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는 탐욕들이 가끔 행동과 말을 통해 보인다. 그 모습들에 나는 가끔 웃음을 남기고 무관심으로 대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자에 속해 있고 주변에 친구들도 얼마 없었다. 애초에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사람들에게 무관심을 보이는 게 편했고 복잡한 일에 휘말릴 일이 없어 좋았다.
하지만 요즘 내 주변이 시끄럽더니 이제 그 시끄러운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려왔다. 개강 총회 다음 날부터 시끄럽더니 초면인 애들과 인사도 주고받은 적 없는 애들까지 나를 붙잡고 물어봤다.
“너 정국이랑 어떤 사이야?”
“정국이랑 연락해?”
하루에 수십 번 붙잡혀 저런 질문들을 받았다. 그때마다 표정 관리가 안 되었고 아무 사이 아니라고 왜 내가 해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항상 언급되는 정국이라는 이름에 왜 내가 껴있는지도 이해가 안 갔고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한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정국은 우리 학교 대표로 유명하긴 했다. 첫 번째 가장 큰 이유는 돈 많고 잘 생겼다. 말을 한 번도 안 섞어 봐서 성격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꽤 재미있는 아이라고 많이 들었다. 나와 같은 졸업반이었고 전공 수업이 있을 때 가끔 얼굴을 봤긴 했는데 잘생겼긴 했다. 하지만 그 주변 애들이 너무 시끄러워 정국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을 피해 끝자리에 앉아 한 번도 말을 섞어 보지 않았다. 근데 개강 총회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기 위해 정국을 찾아다녔다. 저 멀리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정국이 보였고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정국에게 다가가자 친구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향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정국의 시선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나와 줄래?”
내 말에 정국은 순수하게 일어나서 나의 뒤를 따라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는 뒤를 돌아 정국을 봤고 입을 열었다.
“개강 총회에서 무슨 말한 거야? 안 친한 애들까지 나한테 와서 너와의 관계를 묻고 가.”
“아, 그건 미안해. 개강 총회에서 별말 안 했어.”
그 말에 나는 정국을 뚫어지게 봤고 정국은 픽하고 웃더니 “무슨 말 했는지 궁금해?”라고 물어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국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좋아한다고 말했어.”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정국은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냥 한순간의 장난으로 뱉은 말인가 아니면 나를 놀리기 위한 말인가. 나는 당혹스러움에 입술을 깨물었고 정국은 계속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너랑 대화해 본다. 앞으로 계속 대화해도 돼?”
“아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너 좋아한다는 말, 술기운에 그냥 뱉은 말 아니야.”
진지한 얼굴에 나는 입을 닫았고 정국은 계속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깐 조금 더 대화 할 수 있게 해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 나왔다. 쟤는 날 언제부터 좋아한 건지 저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걸까. 눈에도 간절함이 보였고 조급함이 보였다. 꽤 오랫동안 나를 좋아한 것 같은 얼굴로 저런 말과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끄덕임에 정국은 웃더니 핸드폰을 건넸다.
“전화번호 좀 줄래?”
나는 조용히 내 번호 11자리를 찍었고 정국은 해맑게 웃으면서 “앞으로 연락해도 될까?”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국은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자리는 내가 먼저 피해 버렸다. 모든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들이었고 꼬여버린 상황들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쟤가 나를 왜 좋아하는 거야. 의심도 들면서 아까 그 얼굴을 보니 진심인 정국이 모습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다 못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크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은 긴장감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미세한 정국의 다정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울린 이유는 정국의 문자였다. 문자 내용은 자주 대화하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와 다른 형태의 사람이었고 다른 형태의 사람을 만나면 피곤해지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런 반응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답장해주는 순간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매우 컸다.
며칠이 지나고 가끔 정국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문자 내용만 읽고 답장을 해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누가 내 이름을 불렀고 뒤를 돌아보니 정국이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정국은 다급하게 나에게 와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정국이 친구들 시선이 느껴졌다. 각 다른 시선들이지만 몇 개의 시선은 탐욕에 찌든 날카로움이 보였다. 그 시선이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정국이 말을 끊어 버리고 나는 말을 뱉어 버렸다.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 아는 척하지 말아 줄래? 조금 부담스럽거든.”
톡 쏘는 내 말에 너는 탄식을 뱉고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매우 이기적인 내 모습을 정국은 사과를 건넸다. 그 사과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낮은 자존감이 문제인 건데, 사과하는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하지만 나는 사과를 뱉을 수 없었다. 내 높은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해줘서. 아니, 나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에 정국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럼 앞으로 단둘이 봐야겠네.”
정국의 말은 당연한 것 같은 말투였다. 태형은 그런 정국을 신기하게 쳐다봤고 정국은 웃으면서 태형을 봤다. 너라는 아이는 참 긍정적인 아이고 사람 마음을 한순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구나. 눈앞에 나를 좋아한다는 아이는 나와 결이 다른 아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정국은 태형을 보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은 친구들 있으니깐, 나중에 혼자 너에게 다가갈게.”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국은 다시 친구들 곁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혼자 집에 걸어갔다. 수많은 생각이 들었고, 뛰는 심장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내가 저 아이를 보며 심장이 뛰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 인생사에 사랑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의 연애 끝을 보면 나는 항상 굳이 아픔을 감당하면서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사랑을 줄 그릇도, 사랑을 받을 그릇도 아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일 수도 있다. 태형은 괜히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다가온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건지 아니면 나를 위해 이 다가온 사랑을 거절해야 하는 건지. 정답을 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에 태형의 행동 변화는 정국이 문자를 답장해 줬다. 성의가 있는 답장들도 아니었지만, 정국은 항상 대화 내용을 이끌고 자신의 일상을 소소하게 알려줬다. 태형은 항상 대답만 했다. 정국은 홀로 태형에게 찾아와 인사를 했고 태형도 똑같이 인사를 했다. 말이 없는 태형에게 정국이 항상 먼저 말을 꺼냈고 정국이 노력에 태형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며 사랑을 다시 생각해 봤다. 저 아이의 사랑은 왠지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국아, 내일 점심에 밥 먹을래?”
내 질문에 정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떤 걸 먹을지 정하자고 했다. 나는 그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고 닭갈비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내 말에 정국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내 모습이 낯설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내일 점심에 그와 함께하는 점심이 기대되었다. 정국도 내 마음과 같은지 기대된다는 말을 뱉었고 나는 그냥 살짝 웃어 보일 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고 정국은 문자에서도 내일 점심이 기대된다는 말들을 뱉었다. 나는 ‘ㅋ’만 보내며 부끄러움을 감췄고, 쿵쿵 뛰는 심장을 귀 기울여 봤다. 이제는 정국과 자기 전까지 문자를 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붙잡고 정국의 일상들을 들었고, 나는 항상 그에게 대답만 했다. 그러다 졸음이 몰려오면 나는 잔다는 말만 보내고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오고 핸드폰 시계를 보며 점심을 기다렸다. 교수님이 수업을 마친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짐을 챙겨 강의실로 나와 나를 기다리는 정국에게 갔다. 저 멀리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정국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정국은 웃으면서 “배고프지?”라고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국은 빨리 가자고 하면서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손에 닿은 낯선 촉감이 심장의 뜀박질을 더 크게 만들었다. 누구와도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손이었고 이 간지러운 모든 감촉들이 낯설었다. 그래서 정국 몰래 손을 빼려고 해도 정국은 자신 손에 힘이 안 들어간 줄 알고 더 힘을 주워 내 손을 더 붙잡았다. 그리고 맞잡은 두 손을 나는 뚫어지게 봤다. 이 낯선 것들이 사랑인 건가.
닭갈비집에 가는 길에 정국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줬다. 나는 그 이야기에 웃었고 내 웃음을 보고 정국도 따라 웃었다. 소소한 웃음 덕에 빠르게 닭갈비집에 도착했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분위기를 이끄는 건 정국이었다. 나는 문자와 같이 반응을 해주고 웃어 보일 뿐이지만 그런 나에게 정국은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닭갈비가 나오고 나는 닭갈비를 먹으면서 말했다.
“나를 왜 좋아하는 거야?”
“그냥.”
정국이 대답은 간단했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의미가 궁금했고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정국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눈길이 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너랑 대화하고 싶어졌고, 시간이 더 흐르니깐 이게 좋아하는 감정이 됐어.”
“아.”
나는 탄식을 뱉었다. 내 탄식에 정국은 그냥 웃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모든 걸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 단편적인 부분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 말만 뱉고 정국은 닭갈비 하나를 집어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는데 이유라. 내 앞에 있는 저 아이를 향해 뛰는 심장도 어떤 이유로 평소보다 더 빠르게 뛰는지 심장 주인인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아내자면 나와 정반대인 그 말과 행동들에 이끌렸다. 마치 N극과 S극이 서로 다른 자기장으로 각자를 이끌어 붙게 만들었듯이 저 아이와 나도 그런 효과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나는 말이 없었고 평소와 같이 정국이 여러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 나는 대답을 했고 우리들의 첫 식사는 끝이 났다. 닭갈비집을 나오고 나는 집에 갈 생각을 했는데, 정국이 나를 붙잡았다.
“이대로 헤어지는 거야?”
“더 할 게 있나?”
미련 없는 것 같은 내 목소리에 정국은 탄식을 뱉더니 내 손을 다시 맞잡고 커피 마시러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그 힘에 이끌려 나는 발걸음을 옮겼고 정국은 나를 데리고 작은 카페 안에 들어왔다. 카페 안은 원두 향이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태형은 카페 내부를 훑어봤다. 벽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은 붙어져 있었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특유의 글씨체들로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에 이끌려 구석진 자리에 앉았고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보며 이름도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슬쩍 훔쳐봤다. 정국은 그런 나를 보며 웃었고 혼자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가지고 내 앞에 앉았다.
“포스트잇 보는 거 재미있어?”
“응, 꽤 재미있어. 근데 음료 뭐 시켰어?”
“네가 좋아하는 거.”
정국이 대답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랑 오늘 처음 카페를 왔는데,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아무거나 시켜 놓고 당당하게 말하는 느낌도 나긴 했다. 곧 음료가 나오고 내 앞에는 딸기 스무디가 놓여졌다. 그 스무디를 보고 나는 놀란 눈치로 정국을 봤고 정국은 살짝 웃으면 부끄러움과 당당함 그사이 어디쯤에서 말을 했다.
“너한테 관심 있어서 주변 친구들한테 좀 물어봤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딸기 스무디 한 입을 먹었다. 입에 퍼지는 딸기의 달달함이 괜찮았다. 그리고 앞에서 나를 힐끗힐끗 보는 저 아이의 관심도 괜찮았다. 그 아이와 함께한 하루는 괜찮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하게 괜찮은 느낌. 나를 배려해주는 느낌도 들었고 소문으로만 듣던 정국의 다른 부분까지 엿본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멍하게 천장을 보는데 오늘 카페에 대화했던 장면들이 천장에 두둥실 떠다녔다. 나는 그 장면을 멍하게 봤고 우리가 대화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곱씹었다. 그리고 오늘을 본 전정국은 내가 생각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음도 여리고 자신을 이용하려고 다가오는 사람을 싫어하는 감정을 살짝 엿보여줬다. 그 엿보여준 이유는 내가 먼저 그에게 물어봤다. 아무런 존재감 없는 나를 짝사랑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는 컵에 달리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진심을 보여줬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고 먼저 다가오는데, 너는 항상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눈길이 갔어. 그 눈길이 곧 관심으로 변했고 그 후에 너를 좋아하기 시작했어.”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고백이었다. 그 고백을 듣고 내 생각보다 전정국이라는 아이는 괜찮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사랑적인 관심이 아닌 그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관심. 그래서 오늘 밤 자기 전에 그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잘 자.’ 그 문자를 보내자 정국에게 바로 답장이 왔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오고 정국의 답장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귀여워.”
어쩌면 그에 대한 관심이 사랑의 관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그가 귀엽게 보인다는 점으로부터 시작됐다.
그 문자 이후에 나는 정국에게 매번 짧게 답장을 해줬고 정국은 매번 빠르게 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가끔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를 서로 건네기도 했고 가끔은 단둘이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홀로 학교를 걸을 때 나를 붙잡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정국이랑 어떻게 친해진 거야?”
“정국이랑 사귀는 사이야?”
가관인 질문만 하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마음으로 정국에게 접근하는 아이들이 많구나. 어쩌면 인기 많은 자도 그다지 좋은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와 친구가 대고 싶어서 접근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 같았다. 나는 수많은 질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정국이 손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길을 걸었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도 주변 애들이 나 붙잡고 물어보더라.”
“무슨 질문 하는데?”
너는 그 아이들이 누군지 아는 듯 불안해 보였다. 눈동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많은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고 잘 안 뜯는 손톱까지 너는 불안함에 물어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항상 너를 주시하면서 이용하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너에게 말했다.
“너랑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보던데?”
그 말에 너는 불안감에서 해소가 됐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동자도 멈췄다. 그리고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을 멈추더니 나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보고 얼핏 생각했다. 너는 이렇게 웃는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워.
“그렇구나. 그래서 뭐라고 했어?”
“그냥 웃고 말았어.”
“왜?”
“사귀는 사이는 아니고 안 사귄다고 하면 계속 붙잡고 물어보니깐.”
그 말에 너는 탄식을 뱉었다. 그리고 너는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췄고 나도 너에 따라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너를 봤고 나는 살짝 붉어진 귀로 나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진짜로 사귀는 사이할래?”
그 말에 나는 정국을 뚫어지게 봤다. 이미 그때 그 미세한 호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고 그것은 곧 사랑의 형태로 그를 볼 때마다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정국을 향한 사랑을 부정할 수 없었고 그의 고백에 나는 정직하게 응답해야 했다.
“좋아.”
간결하지만 그게 나의 사랑을 다 표현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너는 내 표현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웃어 보였다. 마치 그 표현마저 너는 나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는 모습 같았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에 더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낮은 내 자존감까지도 아껴주는 너의 그 배려를.
그 후에 우리는 학교에서 연인처럼 행동했다. 손을 잡고 다녔고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한 번씩 쳐다봤다. 학교에 유명한 아이와 존재감이 없던 아이 둘이 사귄다는데 누가 안 궁금해 하고 안 쳐다볼까.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시선을 감당해야 했고 나를 붙잡고 물어보던 아이들은 지나가다 한마디씩을 던졌다.
“원래 조용한 애가 더 무섭다더니.”
“전정국은 왜 쟤랑 만난데?”
그때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특히 정국은 나랑 왜 만나냐는 의문들에 나는 어떠한 부정도 어떠한 반박도 못 했다. 연인 사이지만 그가 왜 나를 사귀는지 당사자인 나조차 모르는 문제여서. 그런 내 모습이 비참했고 비참했다. 무엇을 탓하고 싶었지만, 그 문제는 그냥 나의 낮은 자존감 문제지. 누구를 탓 할 수 있을까. 이 사랑을 탓하고 싶지 않았고 정국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 두 가지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가 되어서 나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들이었다. 아파할 거면 나 혼자 아파하는 편이 속 편했다. 이런 내가 바보 같아도 결국, 이 모습이 나의 사랑이자 나의 표현 방법이다. 이 아픔이 아물지 못하고 진물이 흘러 더 깊은 상처를 주면 그때 이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볼게.
그렇게 나는 혼자 모든 걸 감당했다. 정국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고 뒤에서 아파했다. 너는 항상 나에게 사랑을 줬고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랑만 있으면 저들의 열등감은 감당 할 수 있어. 그 생각을 하며 정국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내 입맞춤에 너는 기분 좋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너를 껴안았다. 너에게 안길 때마다 나의 상처는 아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물어 가는 상처를 누군가 계속 건든다.
종강이 찾아왔고 종강 총회를 한다고 대학교 근처 술집에서 다 모였다. 원래 그런 자리를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갔다. 정국이 주변 친구들이 정국에게 오라고 닦달했고 친구들과 나 사이에 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고맙다며 입을 맞췄고 그 입맞춤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우리는 두 손을 꽉 맞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 둘에게 모든 시선이 향했다. 익숙해지려고 했지만, 그 시선은 익숙하지 않았다.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정국은 내 손을 이끌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술자리는 시작되었고 내 상처가 더 깊어진 날이었다.
정국은 내 옆에 붙어서 나를 챙겼고 그의 보호를 받으면서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국 주변 친구들은 정국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다가 우리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둘은 어쩌다가 만난 거야?”
“내가 먼저 좋다고 했어.”
정국은 수줍게 웃으면서 대답했고 그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났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나를 보며 말을 던졌다.
“조용해서 연애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
그 말을 하고 그 애는 술 한 모금을 마셨다. 저 말뜻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의외일 수도 있나. 그런 의문이 생겼고 태형은 눈앞에 있는 소주잔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정국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대화를 했고 우리 둘은 가까이 앉았지만 뭔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동떨어지는 기분이 이런 느낌인가. 검지 손톱 끝으로 소주잔을 괴롭히는데 정국이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니 그는 웃으면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국 없이 홀로 그 시선을 다 받아야 했다.
“너 대단하다. 조용해서 그럴 줄 몰랐는데.”
그 말을 한 아이가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나는 손에 힘이 들어갔고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그런 줄 몰랐던 걸까.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사랑에 욕심을 가지면 안 되는 존재였나. 심장 박동은 더 크게 느껴졌고 주변 애들의 시선이 모두 나한테 향해있다는 걸 느꼈다.
“전정국은 너랑 왜 만난데?”
저 질문에 나는 고개를 들어 질문을 던진 아이를 봤다. 입을 열어 말해야 했다. 서로 사랑해서 만나는 사이라고. 하지만 입술을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그가 나를 왜 만나는지 아직도 몰랐다 아니, 확신보다 의문이 더 컸다. 굳이 나를 왜 사랑하는 건지. 정국 주변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 상처는 더 깊어졌고 진물이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홀로 밤길을 걸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눈물이 흘렀고 소매로 피부가 따갑도록 닦았다. 왜, 그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걸까. 길거리 한가운데 나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비참했다. 이 사랑도 지키고 싶었고 정국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이 사랑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나는 이 사랑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의심을 했고 정국 또한 의심했다. 그에게 믿음은 있지만, 확신은 없었고 사랑이 있지만, 불안도 공존했다. 그 속에서 나는 정국도 속이고 나를 속였다. 애써 괜찮다고 웃어 보였고 그런 행동들이 결국 상처를 키워 터지게 만들어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 사랑이 나에게 과분하고 정국도 나에게 과분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결국 내 낮은 자존감이 문제겠지.
태형은 울면서 집으로 갔다. 눈가는 붉어졌고 소매로 닦은 피부는 따가웠다. 처연한 이 상황에 딱 어울리는 밤공기였다. 그때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고 전화를 한 사람은 정국이었다. 핸드폰 액정을 뚫어지게 본 태형은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이기적인 행동이지만 지금 나를 감당하기도 힘든데 내가 어떻게 너를 감당 할 수 있을까. 내 모든 사실은 말하면 너는 어떤 말을 꺼낼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 그런 말들을 신경 쓰지 말라고 하겠지. 근데 나는 그게 잘 안 돼. 상처 되는 말을 어떻게 신경 안 써. 나는 그런 거 못 해. 태형은 혼자 중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마지막 흘린 눈물이 다 말라 볼에 자국을 남겼고 그 마른 눈물 자국이 태형을 더 처량하게 보이게 만든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정국을 피했다. 모든 연락과 그와의 마주침을. 그냥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 이 사랑에 자신이 없었다. 그는 나와 너무 달랐다. 그는 빛이었고 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정국을 피하는데 문자 하나가 왔다. 제발 한 번만 답장해달라는 그의 간절한 메시지였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 만나자고 했다. 그에게 만날 장소를 보내고 나는 그 장소 가서 그를 기다렸다. 복잡한 머릿속은 두통을 일으켰고 그를 보자마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리고 저 멀리서 정국이 보였다. 긴장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정국 내 앞까지 왔고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봤다. 그 눈을 보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무거워진 심장은 내 폐를 눌러 완벽히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그에게 상처를 줬다.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상처가 났다. 우리의 사랑도, 그의 마음도. 이것도 그저 나의 문제겠지.
“태형아, 왜 연락이 안 된 거야? 응?”
그는 내 팔을 붙잡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를 미세하게 떨렸다. 그도 이 사랑이 잘못된걸 느낀 거겠지. 아니, 오늘 내가 이별을 말할 거 그는 직감한거 였다. 그는 원래 눈치가 빨랐고 내 행동들에 대충 감이 왔겠지. 그리고 내 표정을 보고 이별을 확신한 거고. 그냥 혹시나 하는 희망을 붙잡고 나에게 변명을 말해달라고 내 팔을 붙잡은 걸 나는 알았다. 우리 사랑은 결국 비참해졌다. 그 어느 드라마 시나리오보다 비참했고 처절했다.
“우리 그만하자. 나에겐 넌 너무 과분해.”
“사랑에 과분함이 어디 있어. 응?”
“아니, 여기 있잖아. 너와 나는 너무 달라.”
내 팔을 붙잡은 너의 손을 밀어냈다. 너의 손은 순순히 떨어져 갔고 너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미세하게 가슴이 아프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사랑인 줄 알았으니깐.
우리 사이 가운데 컷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의 사랑 소설은 끝이 났다. 결국 세드 엔딩이었고 우리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엔딩이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미세하게 웃었다. 그리고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 꽤 괜찮은 사랑이었어요, 주연 전정국씨. 이 시나리오의 당신은 가장 멋진 역할이었고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었어요. 당신은 앞으로 멋진 역할을 맡을 겁니다. 그리고 태형은 마지막 한 마디를 허공에 뱉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연 김태형에게 많은 애정을 줘서.”